




쿠레시마 타카토라는 꿈을 꾸었다. 7일의 반복과 수많은 엔딩을 보며 그것들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바뀌지 않았다. 분명히 없었어야 할 센고쿠 료마가 나를 방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
잠이 들었을 적, 눈을 뜨며 일어났다.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시선을 바로잡던 중, 눈에 보이는 것은 앉아있는 한 사람.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 사람은 당황한 눈빛을 하며 자리에 앉은 채로 내게 말했다.
“좀 더 누워 계시는 게 좋을 거예요. 갑자기 기절하셔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내가 기절했었나?”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이어나가진 않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그건 관심 밖의 일이었다.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처음 보는 자리에 누워있으며 당신은 누구인지. 그것만이 내 관심이었다.
“제가 누구인지 궁금하실 텐데, 조금 기다려주세요. 지휘사 님이 갑작스럽게 깨어날 줄은 몰랐거든요.”
“지휘사? 날 말하는 건가?”
네. 그 사람은 짧고 굵게 말하였다. 쉽게 납득이 가진 않았지만 그래도 말해준다고 했으니 그 자리에 누워있기로 했다. 아니, 성격상 누워있진 못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니 그 사람은 고개를 돌리며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안 돼요, 지휘사 님! 몸이 성치 않을 텐데!”
문을 열었다. 새하얀 빛이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는데 눈을 떴을 땐, 한 회사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이그드라실은 아니었으며, 다른 사람들이 많이 보였을 때,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모노클을 쓴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네가 새로 온 지휘사인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런 것 같다만.”
“자세히는 모른다.”
모노클을 쓴 사람은 눈을 찌푸렸다. 그는 안에 있는 사람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앙투아네트, 이게 무슨 일이지?”
“모르겠어요, 안화. 기억상실증일지도 몰라요.”
‘7’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처럼. 그들이 말을 건네고 있을 때, 커다란 숫자가 눈앞을 지나갔다. 살면서 이런 적은 처음인지라 자신도 모르게 눈을 찌푸렸다. 저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 밖을 나가기 시작했다.
“안 돼, 지휘사! 아직 회복이 덜 됐어!”
이번엔 앙투아네트라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고 바깥으로 향했다. 내가 여기에 있을 이유는 없어. 나는 지휘사가 아닐더러, 이 세계는 내가 살아가고 있던 세계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라, 타카토라 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 사람의 모습은, 마치 흰토끼의 모습과 같았다. 시계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과 등 뒤에 보이는 장식-그에게는 그리 보인다.
-이 흰토끼를 상징하는 것만 같았다. 동화 속에 나오는 모습. 그렇지만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센고쿠 료마라는 분이 알려주셨어요. 그분은 저희의 연구원이에요.”
료마가 여기에 있다고? 연구원? 료마도 이 세계에 있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반응하였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지?”
“저희와 함께 있어요. 그보다 지휘사라는 직업에 대해 알고는 계시는가요?”
“아니, 난 모르고 있다만.”
듣지도 않고 뛰쳐나왔으니 알 리가 없다. 대화하던 사이에 앙투아네트와 안화, 그리고 나를 불렀던 사람이 함께 나왔다. 앙투아네트라는 사람은 아래에 무언가를 타고 있었는데, 그것의 형태는 마치 물고기와도 같았다.
그 사람들은 안을 쳐다보며 안심을 한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갑자기 뛰쳐나가면 어쩌나.”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요, 지휘사 님.”
“급한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지휘사.”
다급한 목소리는 맞았으나 한 편으로는 안을 쳐다보았다.
“안, 고마워요. 지휘사 님은 아직 회복이 덜 되셨거든요.”
“아니에요, 앙투아네트. 저도 중앙청으로 들어가려다가 만났거든요.”
눈을 찌푸리며 쳐다보았다. 난 지휘사라는 직업을 가졌으며, 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까지 막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내가 너무 성급했군. 미안하게 생각한다. 여긴 어디지?”
앙투아네트라는 사람은 나를 쳐다보며 미소를 보였다. 괜찮아요, 지휘사 님.
그런 후에 그들의 지도 하에 중앙청이라는 곳으로 돌아갔다.
*
중앙청, 지휘사에 대해, 신기사에 대해, 그리고 흑핵. 흑핵은 생각보다 위험했으나 중앙청에 있는 흑핵은 이미 다른 지휘사가 정화했다고 말했다. 지금 그 지휘사는 고등학교를 탐사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또 다른 지휘사가 있는데 그 지휘사는 곧 이곳으로 오겠다고 말했다.
“지휘사가 또다시 나타날 줄은 몰랐어요. 저희는 고등학교를 탐사 중인 지휘사님이 생겼을 때도 많은 일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지휘사가 적은 건가?”
이 세계는. 뒷말은 곱씹었다. 우선 센고쿠 료마를 찾아야 했다. 센고쿠 료마는 내 존재를 알고 있으며 안이라는 사람에게 내 말을 했다는 것은 날 찾고 있었단 뜻이므로 그를 만나야 했다.
“네, 신기사는 많지만 지휘사는 적은 편이에요.”
“궁금한 것이 있다.”
“네, 물어보세요. 지휘사 님.”
“센고쿠 료마라는 연구원이 있나?”
앙투아네트는 눈을 살짝 찌푸리다가 이내 다시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 분은 신기사예요. 신기를 발견했을 적, 저희가 데리고 있었지만, 그는 흥미가 잃었는지 이곳을 떠났지요. 사람을 지키는 건 자신과 맞지 않는다면서요.”
말을 잇지 않았다. 센고쿠 료마는 그랬었고, 이 세계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연구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찾아 떠났을 텐데, 안이라는 자가 말한 것처럼 그는 그곳에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했다. 그렇지만 그가 계속 연구를 하는 것은 반대하고 싶었다. 그는, 재앙을 불러왔었기 때문에.
“그 센고쿠 료마라는 자를 찾고 싶은데, 혹시 찾을 방법이 있나?”
“안타깝게도 그를 발견한 사람은 없어요. 저희 또한 찾고 있습니다.”
“안이라는 자는 알고 있었는데. 혹시 모르고 있었나?”
“네? 안이요?”
모르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된 거지? 안이라는 자에게 물어보려고 고개를 돈 순간 그 사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흰토끼처럼 시간이 다 되었는지 자리를 비운 것처럼 순식간이었다.
눈을 찌푸리며 주변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안은 누구와 함께 지내지?”
“고등학교로 순찰을 하러 간 지휘사와 함께 지내고 있어요.”
“그렇군.”
“지휘사 님, 제안할 것이 있습니다.”
고개를 틀어 그들을 쳐다보았다. 제안할 것이라니.
“중앙청의 지휘사가 되어주실 수 있나요? 저희에겐 지휘사가 필요합니다.”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센고쿠 료마를 찾아야 했지만 세계에 관련된 이야기였기에. 몇 분간의 정적이 흐른 후에야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알겠다. 내 이름은 쿠레시마 타카토라. 지휘사가 아니다.”
“감사합니다, 쿠레시마 님. 그럼 제가 지내실 곳을 안내해 드릴게요.”
*
타카토라는 아까 전, 7이 뜬 것이 신경 쓰였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보지 못한 것 같아서, 함부로 말하진 못했다. 그럼 지휘사를 지키기 위한 신기사는 누구지? 그들은 그리 말했었다. 지휘사 곁에는 지휘사를 지키기 위한 신기사가 있다고. 중앙청으로 다시 돌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했을 적, 누군가가 문을 두들기더니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아까 전, 앙투아네트였다.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신기사 앙투아네트, 당신과
함께하게 됐어요.”
“네가 내 신기사군. 중앙청의 일은?”
“괜찮아요. 다른 분이 해주실 겁니다. 안화의 의견이에요.”
“그렇군.”
더 말이 오가지 않았다. 다시 한번 곱씹어보아도 앙투아네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과 잘 맞았다.
“잘 부탁하마, 앙투아네트. 최선을 다해보지.”
“처음이시니까 무리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저 또한 잘 부탁드립니다, 쿠레시마 님.”
둘은 그 후부터 침묵을 가졌다.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쿠레시마는 일을 할 때 잡생각이나 잡담은 하지 않았으며 앙투아네트는 괜히 말을 많이 하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쿠레시마는 할 일을 찾아 나섰다.
덤으로 료마를 찾기도 하였다.
*
"센고쿠 료마, 일은 잘되고 있나?"
"물론. 연구는 성공적으로 완성이 되고 있어."
"위험한 물질이니까 휩쓸리지 않게 조심하도록."
"하하, 난 이것에 대해 완벽히 이해했어. 그러니 유해가 되진 않아."
히로는 만족한다는 듯이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센고쿠 료마의 옆에는 달비라가 있었으며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히로의 명령인듯했다.
달비라는 아무 말도 없었다. 료마는 혼잣말이라도 하듯 중얼거리며 흑핵에 대해 알아내고 있었고, 유해화에 대해서도 알아가고 있었다. 달비라는 그가 무엇을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혼잣말하든, 그 유해를 가지고 장난을 치든, 그가 유해화가 되든 그의 신경 밖이었다. 그렇지만 아자젤은 아니었다.
"달비라, 센고쿠 료마라는 사람. 마음에 들지 않아?"
"시끄럽다, 아자젤. 우리는 감시를 하는 거지, 네 마음에 들고 안 들고 가 아니야."
"재미없는 작은 친구네."
아자젤은 그 말을 한 뒤에 스스로 모습을 감추었다. 달비라는 가면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짜증이 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긴장을 늦추진 않았다. 센고쿠 료마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신기사고, 히로는 무엇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 신기사를 데려왔기 때문에. 칫, 소리와 함께 달비라의 모습은 사라졌다.
센고쿠 료마는 그것을 발견하고는 바로 다른 작업으로 옮겼다. 그의 신기는 레이피어였지만 그의 두뇌는 신의 두뇌 안화와 비슷했으며 그보다 더 좋을지도 모른다. 센고쿠 료마의 행적은 그 누구도 모른다.
쿠레시마 타카토라를 제외하고.
*
하루는 조용히 지나갔다. 새로운 지휘사라며 고등학생, 아니면 그 이상으로 보이는-교복으로 보이는 것을 입고 있어서 그리 생각했다.-지휘사와 인사를 했고 히로라는 지휘사와도 만났었다. 그렇지만 아무 수확도 얻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센고쿠 료마에 관해 물어보았지만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그를 찾을 필요가 있다.
앙투아네트는 말없이 따라다녔다. 타카토라는 할 일은 안 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의 말을 듣고 건물을 세우거나 순찰을 하거나 몬스터를 잡기도 하였다. 앙투아네트는 이 사람이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를 순순히 따르기로 한 이유도 이곳에 있었다. 그는 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그리 생각했다.
세상이 어두워지고 암흑으로 뒤덮였을 때, 앙투아네트와쿠레시마 타카토라는 서로 헤어졌다.
타카토라는 자신의 방으로, 앙투아네트는 중앙청으로. 이것을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아침이 되었을 때, 다시 한번 눈앞에 '6'이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자세히는 몰랐지만 카운트다운과 유사했으며 이것을 말하기로 하며 앙투아네트에게 찾아갔다. 앙투아네트는 생각보다 바빠 보였지만 내 말을 유심히 들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쿠레시마 님 말대로 카운트다운 같아요."
"이해했다면 다행이군. 무엇의 카운트다운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해보겠다. 하루가 지나면 하나씩 줄어들고 있어. 이제 6일 남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만."
"그럴지도 몰라요. 안화에게도 말해야겠어요."
타카토라는 눈을 가늘게 뜨다가 나가는 앙투아네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에게 말하지 않는 게 좋아 보인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죠?"
"글쎄. 모르겠지만, 우선 우리만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앙투아네트는 잠시 고민하는 눈치더니 이내 알겠다며 입을 닫았다. 중앙청 사람들이 알아도 좋을 것은 없어 보인다. 알아도 해결할 방법이 없을 더러, 있더라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안화는 계속 대화하는 우리가 신경 쓰였는지 찾아왔다.
"할 일이 없다면 순찰이라도 나가보는 게 어때. 운이 좋다면 히로를 만날 수 있을 거다."
"앙투아네트."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가요, 쿠레시마 님."
안화의 말에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만 끄덕이다가 앙투아네트와 함께 바깥으로 나갔다. 사실 히로라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히로와 료마가 함께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생각했다. 오늘은 앙투아네트에게 사실을 말해 히로를 찾아야 한다고 해야겠다.
"앙투아네트, 사실 히로를 찾아야한다. 내 친구가 그자와 함께 있는 것 같아."
"그런가요? 마침 히로 님을 찾아야 했는데, 제가 도움이 되어드릴게요."
"도와줘서 고맙군."
"아니에요. 저도 할 일을 할 뿐이니까요."
앙투아네트와 연구소를 순찰하기 시작했다. 히로가 연구소에서 자주 보인다는 소문과 료마는 연구실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레이첼이 있는 연구소, 그리고 히로가 이용하는 연구소. 앙투아네트는 히로가 이용하는 연구소에 대해 알고 있었다.
마침 오늘, 유해화를 시키는 히로를 발견했다고 한다. 새로운 지휘사와 함께 있었다고 했는데, 앙투아네트는 그것을 알고 찾아가려고 했으나 그사이에 내가 찾아왔다고 말해주었다. 타이밍이 좋았군. 나는 그리 생각했다.
히로를 찾아갔을 때 처음 본 지휘사와 안이라는 사람, 그리고 히로가 있었다. 료마는 어디로 갔지?
"아, 앙투아네트. 그리고 새로 온, 쿠레시마 타카토라 군이었나? 이거, 만나게 되어 영광이군. 나는 히로라고 하네."
"쿠레시마 타카토라입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래, 무엇이지?"
"센고쿠 료마의 행방. 그리고 당신의 속셈."
앙투아네트는 방주에 처음 본 지휘사와 안을 숨겨두고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히로의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웃는 표정으로 손을 내밀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 그 유능한 친구를 말하는 건가? 지금 여기에 없어. 내 동료들과 함께 순찰을 하고 있다네."
"그가 돌아오면 내게 연락해줄 수 있나?"
"물론이지, 쿠레시마 타카토라 군."
"그리고 유해화에 대해 말씀을 해주셔야 할 겁니다, 히로 씨."
"그건 내 실험의 일부일 뿐이야. 그대가 알아서 무얼 할거지?"
"유해화가 된 신기사는 없어져야 합니다. 그러기로 약속했잖아요."
앙투아네트가 대화에 끼어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낄 자리가 없을 더러, 처음 만난 지휘사는 놀란 표정으로 나와 앙투아네트, 그리고 히로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데리고 바깥으로 데리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바깥으로 나갔을 때, 처음 본 지휘사는 내게 말을 걸었다.
"안이 말했던 새로운 지휘사가 당신인가요? 전 마리라고 합니다."
"시안. 만나서 반갑군. 지금 상황이 이래서 대화도 제대로 못 하겠는데."
"아니에요.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안, 그렇지?"
"네! 물론이죠! 타카토라 님의 잘못이 아닌걸요."
활기차 보이는 메이드와 정의가 넘쳐 보이는 지휘사였다. 미소를 살며시 지으며 다시 안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앙투아네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히로라는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모르지만 신경 쓰이기는 마찬가지였음을.
앙투아네트가 나오고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방주를 타고 나오며 안과 지휘사, 그리고 나에게 미소를 보이며 나왔다.
"상황은 전부 끝났어요. 이제 복귀하죠."
"알겠다."
더는 묻지 않았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들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것이 좋아 보였다. 나는 료마를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
"왜 말하지 않은 건가."
"말해서 좋아질게 뭐가 있어? 난 여기가 좋아. 실험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지금 타카토라를 만나고 싶지 않거든. 난 나 자신을 증명할 거야. 그가 만족할 수 있는, 그런 것을."
"지원을 해주는 건 상관없지만 우리가 여기에 데려온 이유는 알고 있겠지."
"물론이지.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잘 도와주고 있잖아?"
히로는 센고쿠 료마가 신경 쓰였다. 그의 속셈도, 그가 도와주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더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을 물어도 그는 대답해주지 않았고, 달비라를 시켜 그를 조사하게끔 했지만 얻은 건 없다고 했었다. 그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래, 아주 완벽히 잘해주고 있다네. 유해화 계획, 계속 도와줄 수 있겠나?"
"내가 계속 실험할 수 있게 해준다면."
료마는 정화되지 않은 흑핵을 들고 앉아있었다. 그렇지만 유해화가 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가 막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의 미소는 소름 끼쳤지만 저런 미소를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다.
"당연하지. 그대의 말대로 해주겠네. 그저 내 실험에만 방해하지 말아줬으면 하는군."
"내가 굳이 방해할 필요는 없지. 하하, 조금만 기다려. 어차피 다 끝나가니까."
센고쿠 료마는 손에 들고 있던 흑핵을 내려놓고 다시 고개를 틀었다. 그가 연구를 시작하면 건들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 누구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히로는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신기사들을 데리고.
*
쿠레시마 타카토라는 센고쿠 료마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그를 만나야했다. 그를 만나서 이 상황이 뭔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어야할것만 같아서. 전에도 그는 세계를 살릴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내었다. 이 카운트다운이 세계를 멸망시킬 것이라면 그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앙투아네트의 표정이 잠시 좋지 않았다가 눈이 마주치니 이내 표정이 돌아왔다. 걱정을 끼치게 해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자신은 중앙청으로 돌아가 일을 해야겠다는 말을 꺼내 나도 자연스럽게 내 방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래도 돌아다니는 게 좋으려나? 방으로 돌아온 상태에서 가만히 있으려니 전혀 그러지 못했고 고등학교를 주변으로 동방거리, 시가지 등, 여러 곳을 돌아다니기로 마음먹었다.
시가지로 향하였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있었고 많이 발전해있었다. 자와메 시와 같은 점이 있다면 이곳은 생각보다 아주 넓다는 것과 수많은 사람이 걸어 다니고 있고 살아 숨 쉬는 도시지만 언제나 위협이 가득한 곳이었다. 몬스터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라서.
나는 자리에 멈춰 서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앙투아네트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누군가가 나타날 것이라며, 그 사람에게 이것을 전해달라고 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종이비행기. 무슨 의도가 있으리라 생각해서,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기다리고 있는 시간 동안 사람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 사이, 사람 하나가 보였다. 내가 아는 사람. 그 사람도 날 알고 있는 사람. 센고쿠 료마였다. 나는 료마를 닮은 사람을 발견하고 그가 가는 방향으로 뛰어갔으나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너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안에게 왜 나에 대해 말했는지, 너는 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것인지.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단지 이 세계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이 세계에 집착하고 있다. 마치 내가 자와메 시를 더불어 지구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처럼.
그를 따라 구석으로 들어갔을 때는 그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헛것을 보았겠거니, 싶어서 뒤를 도는 순간료마는 그 뒤에 서 있었다. 료마는 미소를 지으며 드디어 만났다고 말하더니 내게 흑핵을 보여주었다.
"타카토라, 만나고 싶었어. 내 연구 결과를 너에게 꼭 알려주고 싶었거든."
"네 손에 있는 건 흑핵 아닌가. 어서 손 떼!"
"괜찮아, 타카토라. 생각해봐. 내가 들고 있는데도 미치지 않았잖아."
생각해보니 그랬다. 정화되지 않은 흑핵에 닿았는데도 유해화가 되지 않았고, 그는 멀쩡히 그것을 들고 서있었다. 분명료마는 신기사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나는 다른 신기사들과 달라. 흑핵에 손을 대어도 폭주하지 않아. 그래서 이 흑핵을 가지고 많은 연구를 했어. 레이첼이 많이 원했던 거였는데, 아쉽게 됐네."
"난, 널 찾아다녔다. 료마."
"알고 있어. 안이라는 사람한테서 들었거든. 내 이름을 듣자마자 그가 어딨는지 물었다고, 말해줬었어. 그래서 나도 찾고 있었지. 너만큼은 내 연구를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서. 히로라는 사람은 내 연구를 이해하지 못해."
"그래서 네 연구라는 건 뭐지?"
"아직 알려줄 수 없어, 타카토라. 제의할 게 있어. 네가 내 지휘사가 되는 거야."
타카토라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는 이미 앙투아네트라는 신기사가 있었고 그들이 센고쿠 료마를 찾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그 순간 자신의 눈앞에 선택지 같은 것이 생겨났다. 거절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 그렇지만 난 거절하였다. 그가 무슨 속셈인지는 몰라도 그의 지휘사가 될 생각은 없었고, 그의 옆에는 정말 의도를 알 수 없는 히로가 있었기 때문에 그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료마의 표정은 잠시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괜찮아, 타카토라.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미안하군, 료마. 나중에 중앙청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군."
료마의 표정은 또다시 어두워졌다. 그리고는 낮은 어조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면서 그는 자리를 떠났다. 생각해보기로는 아마 중앙청에서는 자신의 연구를 반대했을 터고, 료마는 그것을 계기로 나왔을 것이다. 나는 료마가 떠난 길을 그대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
그렇게 또다시 하루가 지났다. 내일 마주할 카운트다운과 새로운 일상이 눈에 거슬린다고 생각했을 무렵,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밤을 맞이하였다.
꿈속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작은 소녀, 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 소녀는 아무 말 없이 쳐다보다가 이내 중얼거렸다.
"넌, 누구야? 넌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존재인데."
말을 하려고 했으나 입을 열지 못했다. 마치 누군가의 개입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아니, 괜찮겠지. 새로운 체스 말이구나. 축하해."
환청처럼 들려오던 이 소리에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
'5'
커다랗게 5라는 카운트다운이 지나갔다. 익숙해진 지 얼마나 됐을까. 나는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단말기를 확인하니 앙투아네트에게 연락이 와있었고, 오늘은 중앙청에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그렇지만 기분이 싸한 것은 가시지 않았고 나는 그녀에게 말을 꺼내지도 않고 중앙청으로 향하였다.
중앙청은 조용하였다. 조용할 대로 조용해진 상황에서 바깥에 있던 안과 마주쳤고 안은 나에게 인사를 하며 안에는 회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곳에는 수많은 신기사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며 마치 편이 갈라진 것처럼, 히로의 곁에는 신기사 4명이, 나머지 3명과 중앙청의 지휘사인 시안이 서 있었다. 마치 전투를 할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히로 곁에 있는 신기사 4명 중 한 명은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센고쿠 료마였다. 그는 자신과 어울리는 엇갈려진 나비 모양의 장식이 달린 레이피어를 손에 쥐고 있었다. 신기였다.
"안녕, 타카토라.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생각해봤어?"
"아니, 내 대답은 그대로다. 료마. 너야말로 이쪽으로 넘어올 생각이 없는지."
"난 한번 말하면 거스르지 않아. 그곳으로 돌아갈 생각은 일절도 없어."
료마는 그 말을 하며 레이피어를 나에게 향하였다. 그의 목표는 나였다. 애초에 료마와 나는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 그의 신기는 불안정하고 무언가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저 무기일 뿐이고 그의 몸 상태만 신기사의 형태를 가진 인간일 뿐이었다.
그의 환력은 그렇게 느껴졌다. 앙투아네트는 내가 있는 쪽으로 팔을 뻗으며 료마를 견제하기 시작했고 앙투아네트는 오실 줄 알았다는 말과 함께 료마를 쳐다보았다.
"쿠레시마 님, 전투 준비를. 옵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료마가 달려드는 것을 보며 앙투아네트의 환력을 조절하고 그와의 전투를 시작했다. 그것을 본 히로의 또 다른 신기사들도 앙투아네트를 공격하기 위해 다가오기 시작했고 안화와 에뮤사 또한 전투 준비를 시작했다. 그들의 환력은 시안이 조절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전투가 마무리될 것 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누구 한 명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싸우게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앙투아네트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전원이 이곳을 빠져나가 어딘가에 숨어 있을 순 없냐고. 그렇지만 앙투아네트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어디로든 갈 수 없다고.
그때 시안이 말을 꺼냈다.
"웬시의 기원이 있어. 내가 웬시에게 협력하자고 했었고, 웬시는 알겠다고 했었어. 웬시가 우리를 도와줄 거야."
"……. 알겠습니다, 시안 님. 그럼 시간을 벌어보도록 하죠."
앙투아네트가 신기를 개방하였다. 상대방을 가두고 이동하는 것쯤은 더는 문제가 되지 않아씩 때문에, 앙투아네트는 상대방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방주를 개방하였고 우리는 그 틈을 이용해 바깥으로 이동하였다.
웬시의 기원으로.
이 상황을 보고 받은 웬시는 알겠다면서 웬시의 기원을 열어주었다. 생각보다 넓었다. 치명상을 입진 않았지만, 환자였던 신기사들과 그들의 지휘사들이 쉬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벌써 밤이 되었다. 시간이 왜 이리 빠르게 흐르는지. 방주를 사용한 앙투아네트는 금방이라도 지쳐있었다. 도와줄 방법이 없는 건가.
하지만 환력을 이용하여 전투하는 것은 아직 어색하고 이상했기 때문에 나도 피곤함에 젖어 그대로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다시 사람이 나타났다.
"어째서 체스 말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거야?"
"어째서 내 체스를 망치려고 드는 거야?"
그 사람은 분노를 나에게 쏟아부으며 화를 내었고, 후우, 소리와 함께 진정했는지 말을 꺼내며 사라졌다. 이 세계에서 나가버리라고.
*
'4'
또다시 카운트다운은 움직였다. 이제서야 알 수 있었다. 이건 세계가 망하는 길이라고. 그리 생각했다. 4일이 지나면,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고. 그렇지만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멸망할지는 모르겠지만 료마가 개입했고, 세계가 바뀌고 있기 때문에 우선 료마를 막아야 했다.
중앙청은 히로의 손에 들어갔고, 우리는 웬시의 기원에 있기 때문에 거처를 옮겨야 했다. 웬시의 동료들과도 손을 잡아 히로를 내쫓자고, 그리 다짐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바뀐 것은 이날 하루였다.
히로가 인터뷰를 열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중앙청을 배신했으며 자신을 먼저 공격해왔다고.
우리는 그 인터뷰에 참여할 생각은 없었지만, 앙투아네트는 아니라면서 중앙청으로 향했었다.
그렇지만 앙투아네트는, 어제의 환력 소모로 인해 지쳐있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였다.
그렇지만 문제는 이다음이었다. 앙투아네트가 흑핵에 노출되어 유해화가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기적은 없었다. 바뀔 수 없었다. 웬시의 동료들은 인터뷰에 난입해 앙투아네트를 데려왔고 앙투아네트는 현재 쉬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것도, 피곤해서 잠든 그 짧은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앙투아네트를 찾아갔다. 기적이 있기를 바라며, 그 안에 있던 시안과 눈이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한 뒤에 시안은 바깥으로 향했다.
"괜찮나?"
"저는, 괜찮아요…. 그렇지만 결정할 때가 된 것 같네요…."
"무엇을?"
"히로와의 결판을 어찌 지어야 할 지를요…."
침묵을 가졌다. 내 신기사는 앙투아네트였고 더는 신기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에뮤사와 안화는 중앙청의 일이 아니더라도 웬시와 동료들의 회의에 참여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 와서도 바빴다.
"나는 신경 쓰지 마라. 시안도 마찬가지로 안을… 잃었잖나."
"그렇죠……."
"남은 인원으로 우리는 해결하면 되는 거다."
"그 말을 들으니 든든하네요……. 감사합니다, 쿠레시마 님……."
고개를 저었다. 나는 쉬라는 말과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이제 할 일을 찾아야 했지만 어제의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더욱 쉬게 되었다. 오늘 하루는 그녀와의 대화로 끝이 났지만 깊은 늦은 밤, 안화, 에뮤사 등 여러 사람과 함께 협력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우선 중앙청을 되찾자는 얘기를 했다. 나는 그것에 거절하지 않고 알겠다고 수긍했다. 또 다른 지휘사인 시안도 마찬가지로 동의하였다. 우리는 웬시 기원에서 마지막 다짐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
'3'
이제 이 카운트다운도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당연하겠지만 솔직히 말하여 이 세계를 지키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었다. 이그드라실과의 상황이 비슷했고, 그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타카토라라면 충분히 지키기 위해 싸우리라.
나는 주먹을 세게 쥐고 바깥으로 나갔을 땐 생각보다 날이 밝아왔다. 함께할 신기사가 없으니 순찰을 할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무언가의 이끌림이 있다는 게 이런 걸까. 동방거리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해서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시가지에 갔을 때료마를 만나는 바람에 동방거리를 보지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괜찮을 거로 생각했다.
동방거리에는 수많은 사람이 지내고 있었다. 걸어 다니면서 동양의 느낌을 알 수 있었으니 이곳이 중국이든, 일본이든, 한국이든, 제 딴에서는 좋은 방향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또 그 기색을 느낀 것이다.
나는 그 기색을 따라 뒤쫓아갔고, 그곳에는 또다시 료마가 서 있었다. 그 옆에는 보라색의 결정들이 흩날리며 입꼬리는 올라가 있고 눈으로 추정되는 것의 가면을 쓰고 있는, 오로시아의 옷을 입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아아, 히로 님은 너무해. 이런 걸 나한테 시키다니."
이곳은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는 골목길이었다. 웬시 기원의 사람들이 보기 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 '오로시아'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무슨 속셈이지?"
"히로 님께서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아아, 정말이지. 달비라를 시키면 되면서."
"다른 속셈은 없어, 타카토라. 이것 봐, 타카토라. 이게 신기사들을 살릴 수 있을 거야."
"네가 언제부터 사는 것에 관심을 두었지?"
"아, 미안한데."
료마는 오로시아를 쳐다보았다. 아마 이것 때문이겠지. 료마는 말을 하다 말았다. 평소의료마 같았으면 그냥 얘기했겠지만, 지금은 히로의 도움을 받으며 연구를 하고 있었으니 그에게 반항하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이겠지.
"그런 거에 관심은 없어. 그냥 그쪽에서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을 주었기 때문에 난 흔쾌히 그의 의견을 받고 이것을 만들어낸 거야. 이 실험을 통해 깨달은 게 하나 있어. 힘을 더 강하게 키울 수 있거든."
"그런 건 관심 없다, 료마."
"아, 그래. 오로시아는 언제까지 거기 있을 생각?"
"히로 님이 시키신 일은 다 했으니까 이제 가볼 생각인데, 어라. 잡을 생각이야? 나는 히로 님 아니면 안 붙잡히는데."
"붙잡을 생각은 없으니까 이제 가."
료마는 차갑게 대답했다. 아마 오로시아가 처음부터 불편했을 테지. 료마는 자신을 귀찮게 하는 사람을 특히나 싫어했다. 실험에 성공했지만 성공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는 큰 욕망을 손에 쥐고 있을 거다.
흑핵을 손에 쥐고 있는데 무엇이 불가능하겠는가.
"후후, 정말. 귀엽지 않은 남자는 사양이야."
오로시아 주변으로 꽃잎이 흩날리자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감추었다기보단 꽃잎과 하나가 되어 사라진 것만 같았다. 그 꽃잎을 바라보다가 다시료마 쪽으로 시선을 바꾸었다. 분명히 무슨 할 말이 있으니 그런 거겠지.
"타카토라, 다시 한번 세계를 사랑해볼 생각 없어?"
의외의 말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곱씹으며 생각했다.
"무슨 뜻이지?"
"너는 이 세계를 구할 수 있어. 물론이고말고. 넌, 언제까지나, 내, 이해자, 잖아."
료마는 마지막 말을 또박또박 말하였다. 이해 자라고 생각하고 싶은 료마, 세계를 구할 수 있을 거라는 말에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친구로서의 우정은 아직도 남아있다. 그에게 배신당하면서까지도 말이다.
"정말 이 세계를 구할 수 있나?"
"나를 의심하는 거야, 타카토라?"
"아니, 그건 아니다."
"타카토라, 넌 지휘사로서도 신기사로서도 재능이 뛰어나. 그런데 왜 이번 시간선에선 네가 지휘사일까? 아,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네가 지휘사라면 날 도와줄 수 있을 테니까. 환력을 다스리는 거 정말 힘들더라고. 나 자신을 실험해보지 않았더라면 난 여기에 있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흑핵, 너는 정화할 수 없더라도 넌 이걸 쥐고 세계를 구할 수 있어. 총 8개지만, 우린 1개만으로 충분해. 너는,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너에게 의견을 제시하고 싶어. 나랑 손을 잡자. 물론 히로의 곁에서는 나올 거야.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냈거든.
그리고 방법까지도 알아냈어. 난 더는 그의 곁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거야.
자, 타카토라. 어떻게 생각해? 연구를 할 수 없다는 건 슬프지만, 그래도 괜찮아. 너라는 지휘사가 있으니까."
흥분한 료마는 그대로 줄줄 이야기하였다. 그의 손에는 흑핵도 있었고, 아마 빼앗아 온 거겠지. 나는 그것을 보고료마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친구로서, 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는 동료로서.
"알겠다, 료마. 네 말대로 해보지."
"좋아. 난 이제부터 네 신기사야. 뭐, 신기사라고 해봤자 신기가 없더라면 되지 못했겠지만, 중앙청부터 되찾아야 하잖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료마를 웬시 기원으로 데려갔고 웬시와 그 외 사람들은 당황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중에 앙투아네트도 있었다. 앙투아네트는 중앙청의 사람이었고, 안화와 에뮤사를 마찬가지로 앙투아네트와 같은 반응이었다.
"그를 왜 데려왔지? 쿠레시마."
"중앙청을 되찾기 위해."
"그는 이미 중앙청을 나갔는데."
"세계를 구하고 싶다."
나는 다짜고짜 하는 말이 이거였다. 세계가 위험하다는 것보다 이 말이 우선이었다. 히로는 흑핵을 모으고 있었고 마침 또 다른 신기사가 다른 흑핵들을 모으고 있었다는 것까지, 히로에게는 흑핵이 있었으나 료마가 가지고 나왔으니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고 남은 것은 두 개였다.
"쿠레시마 님, 할 얘기가 있습니다."
"뭐지?"
"세계를 구하고 싶다는 건, 그자가 저희와 함께한다는 뜻인가요?"
"뭐, 그렇게 된 걸지도 모르지. 잘 부탁해."
나 대신 료마가 대답했다. 료마는 미소를 지으며 정화가 되지 않은 흑핵을 보여주었다. 이건 히로의 것이었다. 료마는 이것을 가지고 수백 가지의 연구를 했겠지. 그리고 료마는 그들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그들은 지금 강력하다는 말과 함께 료마는 이곳에 있는 신기사들도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며 말을 하였고, 앙투아네트는 그저 고민하고 있었다.
"강해질 수 있다는 건, 필요 없어. 우리에게는."
별들이 날아다니는 사람, 그리고 운명을 아는 사람. 룰루가 중얼거렸다. 쓰레기.
"운명을 안다는 건 그런 거야. 나는 개입할 생각이 없지만 너 같은 쓰레기랑은 단합하고 싶지 않아."
"하하, 상관없어. 정말 강해질 생각이 없는 거야? 그들의 환력은 이미 너희의 환력을 뛰어넘었어. 그런데도?"
"상관없어요. 우리는 우리 대로의 작전이 있습니다. 그렇죠, 시안?"
"어, 물론 그렇지."
"뭐, 좋아. 그렇다면 강요할 생각은 없어. 사람이 많으니 불편하네. 난 이만 들어갈게. 타카토라에게는 할 말이 있으니까 데리고 갈 거고."
료마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도 않고 다짜고짜 기원 안으로 들어가 남은 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원하는 자리를 얻었는지 그 자리에 서서 흑핵을 다시 보여주었다.
"이 흑핵을 정화해선 안 돼. 이 흑핵은,"
"갑자기 왜 협조적으로 바뀌었지? 넌, 네 의견이 아니면 따를 생각이 없었잖나."
"물론 마찬가지야. 난 그들에게 협조할 생각 없어. 그들은 질 거야. 중앙청을 다시 가져올 수 없을 테니까. 그걸 옆에서 본 내가 하는 말이야. 그들은 실력이 있지만, 힘이 없어. 유해화가 되었지만 유해는 아닌, 그런 신기사들을 어떻게 이기려고?"
"그럼 어떻게,"
"물론 이걸로 유인할 거야. 그들은 지금 중앙청의 정화된 흑핵만을 가지고 있지. 그래서? 이 흑핵으로 나를 실험하고 강화한다면 해결법은 나와. 걱정 마, 얼굴에 이상한 걸 뒤집어쓰진 않으니까."
얼굴을 찌푸렸다. 그 가면을 쓰면 어떻게 되는지 그는 알고 있는 눈치였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료마는 그 실험이 하루 정도는 걸린다고 말해주었다. 마침 카운트다운도 3이 떴고 하루 정도는 기다릴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제대로 된 신기사가 아님을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나는 그를 충분히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와 대화를 하고 작전을 세우는 동안 그사이 밤이 되었다. 내일은 료마가 본인 자신을 실험하는 날이었고 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마지막 날, 우리는 중앙청을 되찾기로 했다.
나는 피곤함에 금세 잠이 들었다. 아마 중간에 다시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
"왜 그와 손을 잡은 거야?"
"체스 말이라면 체스 말답게 내 말을 들어!"
새하얀 공기 속에서 그 사람은 또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정말로 화난 듯한 목소리로, 그러다가 낮게 읊었다.
"이렇게 가서는 안 돼…."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었다.
*
'1'
1이 뜨자 하늘은…, 마치 유해화가 된 것처럼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세상이 멸망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료마를 다시 만났다. 료마는 달라진 모습은 없었지만, 그의 환력은 안정적으로 변했으며 마치 흑핵을 흡수한 것 같은 분위기였다. ……. 흡수해?
"료마, 어떻게 된 건가."
"넌 바로 알아챌 수 있구나, 타카토라."
"어떻게 된 건지 물었다."
"흑핵을 내 안에 집어넣었어. 그래야만 했거든. 내가 노리는 건 중앙청이 아니야. 그건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아니, 모를지도 모르겠네. 그럼 내 말을 따라줘. 난 이 세계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 그래서 수백 번의 엔딩을 경험했지. 이건 마치 게임 같은 거야. 우리는 지금 게임 속에 있어, 타카토라. 나는 신기사로서, 너는 지휘사로서. 그렇지만 넌 플레이블 캐릭터가 아니야. 아마 그래서 그 '신'도 개입하지 못한 거겠지. 시안이라는 지휘사도 그저 그 지휘사를 선택한 그 사람이 지은 이름일 뿐이야. 사실상 그 지휘사는 이름이 없어. 왜냐면 그 캐릭터는 플레이블 캐릭터니까."
료마는 내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해대었다. 게임 속이라고?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그동안 지내온 사람들이 게임 속 사람들이며 나는 그것에 정을 붙여 세계를 구하려고 했던 것이었나?
"그리고 나는 그 '신'을 끌어내리려고 해. 이게 우리가 나갈 방법이야, 타카토라."
"……, 생각할 시간을 주도록."
"아니, 그럴 시간 없어. 왜냐하면, 오늘이 마지막 날이거든. 네가 보던 카운트다운, 그게 마지막이야. 오늘밖에 시간이 없어. 타카토라, 네가 있어야 나는 안정적이야. 어떻게 생각해. 대답지가 나올 거야, 넌 그걸 알겠다고만 하면 돼. 알겠지."
료마의 말대로 내 앞에는 선택지가 나왔고 대답은 전부 알겠다, 였다. 마치 료마가 이 게임에 개입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어쩔 수 없었다. 그에게 알겠다, 라는 대답을 선택하고 그와 함께하기로 했다.
"좋아, 타카토라. 내 계획은…."
*
시간이 지났다. 시간은 저녁 시간대. 그의 말대로 한다면 이 세계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더러,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고 료마는 레이피어를 들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때가 되었어, 타카토라."
"그렇지."
"가자."
나는 료마와 함께 제일 높은 옥상으로 향하였다. 히로는 그곳에 없었다. 마치 방해되는 것을 처리한 것 같은 느낌.
"히로는 내가 처리했어. 그의 신기사들도. 그러니까 걱정 마."
할 말이 없었다. 처리했군. 그게 끝이었다. 나는 료마의 뒤를 따라 높은 곳으로 향했고 그곳에는 흑핵이 쌓여있는 듯한 것을 보았다. 마치 올라오라는 것처럼. 나는 말 없이 료마의 뒤를 따라 그곳을 향해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엔….
"어서 와. 너희들이 먼저 올 줄 알았어."
"네가 이곳의 '신'이구나."
"'신'인 걸까. 잘 모르겠지만."
료마는 그 자리에서 미친 듯이 웃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처럼. 말도 없이 료마는 그 아이를 향해 레이피어를 겨누었고 그대로 달려들어 흑핵을 공격하고, 그 아이를 공격하고, 그것을 반복하였다.
흑핵을 몸에 넣은 그는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이 괴물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 나는 알 수 있었다. 나 자신이었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 아이는 바닥에 쓰러져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세워지는 새로운 의자.
그리고 솟아나는 계단들. 료마는 그것을 보고 나를 향해 웃었다.
"올라가자, 타카토라."
"아니, 난 올라가지 않을 거다."
"왜? 세계를 구하고 싶은 거 아니었어?"
"그렇지만 이 방법은…,"
"이제 와서 거부하겠다는 거야? 이미 끝났어, 타카토라."
료마가 레이피어를 가로로 그으자 그것을 바라보던 눈동자는 시력을 잃은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손을 떨 수밖에 없었다. 아프다고 생각했다. 이만큼 아프지만, 앞이 보이지 않아서, 그것이 공포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공포는 헬헤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업혀져 어딘가에 앉혀지는 기분이 들었다.
"난 이러고 싶었어. 너를 왕이자 신이라고 생각했지. 나의 이해자, 나의 구원자. 그렇다고 생각했고, 내가 죽은 순간에 너를 이곳에 불러왔지. 내가 죽은 것을 난 알고 있어. 넌 배신자지만 방해자가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너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불러왔어. 이 세계를 구하자고 하자마자 너는 그걸 덥석 물었지. 그때부터 잘못된 거야, 타카토라."
"이제부터 네가 왕이야, 쿠레시마 타카토라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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