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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그라운드 X 하나야 타이가
w. 망고

( 시점은 트루엔딩 이후, VR버젼의 배틀그라운드를 겐무 코퍼레이션에서 제작했다는 약간의 설정이 추가되었습니다 )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 깨진 물잔에 쏟아진 물을 다시 채울 수 없는것처럼, 시간에 구속된 자의 엇나간 흐름 역시 주워담지 못한다. 오로지 신에게만 시간을 멈추어서 지배할 권리가 주어진다.

그러나 신은 자비에 무심했다. 신이 공정했다면 왜 인간의 나약함과 괴로움을 시험하려들었을까?

이것은 활짝 닫힌 시간속에서 앞을 보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일종의 게임이었다. 

 버석한 공기가 얼굴을 스쳐가는 감촉에 눈을 떴지만 곧이어 쏟아지는 뙤약볕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메마른 피부, 헝클어진 머리 그리고 어딘가에 세차게 부딪친것마냥 욱신거리는 다리까지. 꼭 높은곳에서 떨어진 알싸한 기분이었다. 낯선 장소에 홀로 남겨진채로 분명 중요한 것을 잊어먹은듯한 ㅡ 기억의 한 조각이 송두리째 날아간 느낌이다. 낯설다고? 어디선가 봤던 곳이다. 꼭 예전에 와봤던 것 같은 익숙함에 짜증을내며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하나야 타이가는 반쯤 몸을 일으켜서는 온몸에 묻은 모래를 대강 털어낸다.

사막 한 가운데 쓰러져있어서인지 온통 모래 범벅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은 방향조차 짐작하기 어렵게 만든다. 쥐죽은듯이 고요하지만 무언가 금방이라도 터질것 같은 적막함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스나이퍼의 직감이라 해야하나. 생각이 나지않는다면 그저 발걸음이 닿는대로 무작정 앞을향해 걷는 길을 선택해야한다. 
 힌참을 걷다보니 하나야는 건조한 사막기후에 조금씩 지쳐갔다. 신발은 이미 모래가 잔뜩 들어가서 걸을때마다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한번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면 걸음을 멈추고 자리에서 기다려야 했다.

종종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던 까끌한 모래알에 시야가 흐려졌다. 어디로가야할지, 어떻게해야할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는다. 그러다 멀리서 아름아름 흙먼지 사이로 마을이 보였다.

인적이라곤 찾기힘든 폐허같은 마을. 꼭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오로지 말라붙은 흙모래를 짓누르며 걷는 하나야의 발소리만이 울렸다. 건물들은 하나같이 텅 비어있었다. 그래도 손으로 슥 닦자 묻어나는 뽀오얀 먼지속의 잔해들이 누군가 거주했던 곳이라고 말해주고있다. 하나야는 여러 건물을 돌아다니며 사람의 흔적을 찾아나갔다. 모든게 이상하다. 오랫동안 버려진 마을임이 분명한데 때때로 최근까지도 누군가 머물렀던 것처럼 온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묘한 기분이 그를 사로잡았다. 하나야는 세 번째 건물을 도착해 낡아 삐걱이는 문을 밀었다. 녹슨 쇳소리와 우수수 떨어지는 먼지가 그를 맞이한다.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자 발밑에 단단한 물체가 느껴졌다. 천천히 발을 치우자 드러나는 것에 하나야의 동공이 가늘어졌다가 다시 커진다. 낡은 총이었다.

무의식에 이끌린 손이 총을 줍는다. 딱딱하고, 군데군데 핏자국이 묻어난 기관단총이다.

탄창은 열발도 채 남지않았다. 불현듯 서늘함이 물에 푼 물감처럼 온몸에 번져나간다. 그제서야 하나야는 모든 것이 기억났다.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기억에 압도되지않도록 손에 든 것을 꽉 그러쥔다. 어지러웠다. 
 
 얼마전 겐무가 자신을 콜했고 신상 게임을 테스트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하나야 선생에게 꼭 맞는 게임이라고 넌지시 제안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하나야는 그에게 몹시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오려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방금전까지 움켜쥐고 있었던 총을 떨구고 말았다.

ㅡ “새로나온 VR서바이벌 슈팅게임의 베타테스터가 되어줬으면 해” ㅡ 슈팅게임은 문제없다며 게임기를 집어든 하나야는 무심결에 모니터를 흘끗 보았다. 게임캐릭터들이 필드에서 총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총기며 필드재현까지 꽤나 리얼하다고 생각하던 찰나 화면의 캐릭터가 무자비하게 난사되는 총탄에 맞더니 저항한번 못하고 푹 엎어진다.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캐릭터를 보고 하나야는 낮빛이 변했다.

서바이벌이란게 이런거였냐. 다른 플레이어를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게임. 하나야는 딱딱한 말투로 거절하고는 게임기를 내려놓았다. 이따위 것을 게임이라고 만들다니. 버튼 하나로 플레이하는 게임도아닌 이런 직접적인 플레이를 요구하는 게임은 자신을 떠보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본래 그는 손에 피를 묻히는 사람이다.

다만 생명을 살리기위해서라는 이유에서 명백히 선을 그을 수 있다. 하나야 타이가는 비록 면허는 없지만, 의사였다. 뒤에서 신이 만든 게임에 감히 비평을한다며 노발대발하는 겐무의 고함을 무시한채로 CR을 빠져나오려고 했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게임 에리어에 있었다. 낯설지않은 사막 배경과 기분까지 전부, 이미 하나야가 게임속에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하듯 그를 가두어놓았다.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엔진소리에 가까스로 정신을 다잡았다. 자신은 게임안에 있으며 당장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임을 클리어해서 엔딩을 찾아야한다. 아니. 엔딩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하나야는 조금전 총을 들었던 두 손을 내려다 본다. 양 손은 피로 얼룩져있었다. 두려움에 미친듯이 고개를 휘젓는다. 피는 사라지고 없다. 사시나무 떨 듯 부들거리던 두 손이 허공에서 갈 곳을 잃었다. 하나야가 가면라이더가 되었던 이유는 5년전의 과거와 연결되어있다. 소멸된 환자를 구하고 의사의 소임을 다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환자를 살리고 싶은 마음. 단지 그뿐이다. 그렇게 그는 다시 스나이프가 되어 5년동안 혼자 멈춰있던 시간을 어렵게 되찾았다. 이제야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나야 타이가는 잃어버릴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가진 것이 많으면 잃어버릴 것도 많아진다.

잃을 것이 없기에, 조금이라도 채워지려하면 바로 그것을 버렸다. 무언가를 소유하기가 두려웠다.

그탓에 밑바닥까지 드러날정도로 텅 빈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총탄에 맞아 구멍이 뚫린 것은 그가 싸운 적이 아닌 하나야 자신이었다. 구멍난 곳은 아무리 채우려해도 다시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그렇게 하나야는 스스로를 상처내고, 시간속에 옭아맸다. 눈앞의 현실은 그를 다시 멈춘 시간속에 밀어넣는다.

불투명한 상자에 넣고 뚜껑을 닫는다. 두려움과 절망이 점철된 그곳에는 하나야만이 존재했다.

 하나야가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이곳에 들어와서 어렴풋이 엔진기어 소리를 들었던 것을 기억해내고 하나야는 다시 건물 밖으로 나갔다. 멀리서 사륜차가 사막을 건너 오고있다.

안에는 분명 사람이 타고있을거다. 어느정도 변별력을 되찾은 하나야가 그 쪽으로 움직이기도 전에 총성이 울렸다. 연속해서 울리는 총성에 하나야가 움찔한다.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들은 제법 빠르게 달리던 차에 퍼부어졌다. 그 중 몇개는 차창을 관통했고 급정지조차 못한채 방향을 꺾던 차는 그 속도로 뒤집혔다. 하나야는 고개를 돌린다.

이윽고 폭발음이 울렸다. 예상했던 일이다. 시커멓게 그을린 잔해들이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한숨을 내쉬었다. 이 숨에 모든 것이 쓸려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시 고요해진 사막을 걸으며 그때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의사면허를 박탈당하고, 머리마저 하얗게 새어버린채 주저앉아 분노하던 날이 떠올랐다.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 눈앞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막지못한다는 죄책감. 이 손으로는 생명을 살려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를 압박해올때면 지독한 괴로움에 빠져들었다. 모순적이게도 살고싶다. 5년전의 자신이라면 모를까 살고싶었다.

타인을 살리는 일에만 집착하다 본인이 망가지는 것은 방치하고 무심해하던 그였다.

그러나 의사가 살아야 환자를 살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그제서야 알았다. 언젠가 클리어하고 남은 앞의 것만을 보라는 말을 했었다. 정작 과거에 속박되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었지만. 하지만 그가 만들고자한 미래는 과거의 재탄생이 아니었다. 과거에 머물러있는 단절된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어지럽게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여전히 텁텁한 공기가 그를 스친다. 껄끄러운 먼지에 입술은 바짝 말라온다. 하나야는 방금전 그 건물로 다시 들어갔다. 똑같은 자리. 똑같은 상황. 그는 또 기관단총을 주워들었다. 누구것인지 모를 핏자국을 닦고 근처에 떨어져있는 탄알을 넣어 장전했다.

클리어한 앞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답할 수 없다. 이것이 시간의 앞 혹은 뒤를 향한 길인지조차 단정짓기 어렵다. 그렇지만 설령 미지의 길이라해도 하나야 타이가 자신의 의지로 클리어해보고 싶었다.

그는 스나이퍼다. 이제 멈추어버린 시공간을 저격하여 그 답을 찾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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