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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박타박-

 검찰청의 복도에 정갈한 구두 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잘 닦여 반짝이는 구두와 밝은 와인빛의 정장, 넥타이 대신 맨 세 겹의 크라바트에 날카로운 인상까지. 여느 날의 미츠루기와 다를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늘 곁에서 그를 돕고 지키는 이토노코는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그의 낌새를 알아챌 수 있었다.

 “저, 검사님….”

 “쉿, 잠깐.”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이토노코가 미츠루기를 불렀지만, 그 입을 가로막은 미츠루기의 손 덕분에 뒤로 이어질 말은 도로 들어가고 말았다.

 “안에 누가 있다.”

 재판에 나가기 전, 분명 걸어 잠가두었을 문이 열려있다. 미츠루기는 열쇠 구멍에 열쇠를 끼우려다 말고 문 옆으로 바짝 기대어 섰다. 상황을 얼추 파악한 이토노코도 미츠루기를 따라 서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총을 뽑아 들었다. 미츠루기의 집무실을 열 수 있는 열쇠는 미츠루기가 가진 것 하나였다.

경비원이 가지고 있는 마스터키가 있었지만, 경비원이 미츠루기의 집무실에 용건이 있을 리 없었다. 미츠루기의 주변 인물 중 주인 없는 방을 멋대로 따고 들어올 정도로 예의 없는 사람은 더욱이 없을 터였다.
 문 너머로는 확실한 인기척 하나가 느껴졌다. 숨길 생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저를 속이기 위해 그런 척하는 것인지는 침입자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츠루기로서는 알 수 없었다.

아직은 벌건 대낮이었지만 천재 검사라 불리는 미츠루기는 명성에 버금가게 악명도 높아 적이 많았고, 실제로 미츠루기의 집무실에서는 살인사건이 일어난 적도, 살인사건의 누명을 쓸 뻔한 적도 있었으니-두 사건 모두 늦은 시각에 일어났고, 후자는 집무실과는 관계없지만- 미츠루기는 경계를 세우고 조심스레 문고리를 잡았다.

 “아, 왔나?”

 문을 박차고 들어간 두 사람을 반기는 것은 뻔뻔함이 잔뜩 묻어난 음색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이 몸 생각보다 늦었어. 마치 이 공간이 제 것인 양, 미츠루기의 자리를 꿰차고 앉아있는 것도 모자라 침입자는 그 주인과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기까지 했다.

 “당신이 왜 여기 있슴까?”

 특별한 무기도 없어 보이고 위해를 끼칠 만한 인물이라고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화가 먼저 치민 것인지 총구 대신 검지를 치켜든 이토노코가 큰 소리를 내었다. 저에게도 그다지 달갑지 않은 얼굴이었고 저 또한 하고 싶은 말이었던 참이라 미츠루기는 이토노코의 행동에 토를 달지 않았다.

 “글쎄, 검사님에게 볼일이 있어서?”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아까 법정에서면 충분하지 않았던가.”

  두 사람의 싸늘한 시선이 느껴지지도 않는지 침입자는 태연하게도 대꾸한다. 미츠루기는 구태여 불쾌한 기분을 숨기지 않았다.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해답보다는 저 침입자와 마주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멋대로 제 집무실에 들어온 것은 둘째치고 아까 법정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이 몸을 도와줬으면 하는데.”

 “난 협력하지 않을 테니 돌아가시게.”

 “아니, 이 몸의 얘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잖아??”

 “변호사가 검사에게 무슨 볼일이 있다고 그러는 것이지? 사건에 관한 자료라던가 그런 것 아닌가. 해서도 안 되고 해줄 생각도 없네.”

 오오토리 츠루기, 라고 했던가. 차갑게 쏘아붙이며 미츠루기는 눈앞의 남자를 흘겨보았다.

머리칼은 단정한 흑발이었지만, 붉은색의 눈동자와 그보다 짙은 붉은색의 정장은 눈에 잘 띄는 차림새였고 쉬이 잊을 수 없는 복장이었다.-미츠루기가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거기다 재판에서 보여 준 실력도 일품이었음에도 법조계에서 그의 이름은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시다지 않슴까, 당장 나가십쇼.”

 “이 몸의 얘기 좀 들어달라니까?”

 미츠루기는 불청객을 쫓아낼 요량으로 이토노코를 바라보며 턱짓으로 그를 가리켰다. 식식거리며, 이토노코는 츠루기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키는 엇비슷해 보였지만 체격은 이토노코가 월등히 좋았다. 영 몸을 쓰지 못할 것처럼 생기지는 않았으나 불청객은 단순한 변호사였고, 상대는 현장에서 단련될 대로 된 일류 형사였다. 불청객을 끌어내기에 무리는 없을 터.
 하지만 미츠루기의 예상과는 다르게 츠루기는 잽싼 몸놀림으로 이토노코의 손을 이리저리 피하며 달아나다 미츠루기의 등 뒤에 자리를 잡고 그를 방패 삼아 이토노코의 접근을 막기 시작했다. 이대로 엎어 칠까, 하고 미츠루기는 고민하다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자 했으나 츠루기는 꿈쩍하기는커녕, 그리 세게 쥐고 있지도 않은 그의 팔을 떼어내기도 벅찼다. 형사도 쓸모가 있지 않았고 경비원을 부른다 해도 이 상태라면 쉬이 쫓아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하…. 그래, 변호사. 들어는 주지.”

 한숨을 푹 내쉰 미츠루기는 결국 이토노코를 내보내고 집무실 소파 한쪽을 불청객에게 내어주었다.

의기양양한 미소를 분을 삭이지 못하는 이토노코에게 보내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아이를 연상시켰다.

미츠루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저 오만함이 깃든 가벼운 태도였다. 법정에서 승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진즉에 깨달았으니 그에게 진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진중함이라고는 도저히 찾을 볼 수 없는 그에게 졌다는 것이-오만함이 무색할 정도로 그의 실력은 뛰어났고 적어도 재판에서 언변을 펼칠 때는 나름 진지했다, 아마도.- 그것도 공방 한 번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고 그의 논리에 압도당해 완벽하게 졌다는 사실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악감정을 품었다기보다는 저의 프라이드가 상처 입은 것이었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대임은 매한가지였다.

 “이런, 맙소사. 그러니까 지금껏 이 몸을 변호사라고 생각했다는 건가? 흠…. 아니, 오해할 만도 하군. 이 몸의 실력이 워닥 뛰어나잖아? 사정이 있어 법정에서 만나기는 했지만…. 다시 소개하도록 할까. 이 몸은 오오토리 츠루기다. 즉, 우주연방의 초대 대통령이자 2대 대통령이라는 것이지.”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가 변호사가 아니라는 말은 무색해질 정도로 충격적인 말이 미츠루기의 귀에 들어왔다. 제가 지금 무얼 들은 건가 싶어 미츠루기는 츠루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특유의 가벼운 분위기 때문에 좀처럼 읽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우주연방.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름이었다. 미츠루기가 즐겨보는 특수촬영물 속에나 나올 법한 허구의 조직 같은 그런 이름이었다. 미츠루기가 알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인류가 발을 디뎌 본 지구 이외의 행성은 달이 전부였다. 허상 속에 사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모종의 이류를 가지고 지구에 온 외계인이라도 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많고 많은 지구인 중에서 하필 미츠루기를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 몸은 환자도 아니고 지구 출신이야.”

 그 속내를 읽기라도 했는지 츠루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미츠루기를 응시해쑈다. 다른 우주에서 온 거지, 지구인은 맞아. 츠루기는 품속에서 장식이 달린 신비롭고 오묘한 빛을 내는 구슬을-츠루기는 큐타마라고 칭했다- 꺼내 보여 주며 제 상황을 읊기 시작했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건가? 차라리 토노사맨이 실존 인물이라는 말을 믿겠어.”

 “진짜라니까? 이 몸은 거짓말 같은 거 하지 않아.”

 츠루기의 말은 믿을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그가 제일 처음 꺼낸 지구인 최초의 외우주 비행사였다는 말은 약과였다. 평범한 검사인 미츠루기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우주여행 도중 사고를 당하고도 우연히 살아난 것도 모자라 불사의 삶을 얻었다는 것부터였다. 그는 불사의 삶을 바탕으로 우주를 하나로 통일했고 그 평화를 위협하는 악당을 무찌르기 위해 불사의 삶을 포기, 긴 잠에 들었다. 하지만 깨어난 300년 후의 우주에서도 그 악당이 활동하고 있었고 그는 저를 깨운 11명의 동료와 힘을 합쳐 악당을 다시 무찔렀다-

 “하지만 아직 우주는 혼란스럽고 평화를 위해서 내가 필요하다?”

 “잘 알아들었군.”

 입 밖으로 소리 내 정리까지 해보았지만, 이해와 믿음은 별개의 것이었다. 미츠루기는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츠루기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온 우주를 뒤져서 찾고 있긴 하지만 인재가 턱없이 부족해서 말이야. 특히 오랫동안 독재자의 지배를 받았다 보니 법과 관련해서는 도움을 구할 사람이 없어. 이 몸이 있긴 하지만… 이 몸도 예전 같지 않고 다른 일까지 겸해서 하기엔 몸이 하나인지라.”

 “...”

 “침묵은 긍정의 뜻으로 해석해도 되겠지? 여기서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할 일은 쌓이고 있거든. 아직도 못 믿는 거 같은데 사실인지는 가서 확인해봐.”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었건만, 미츠루기가 거부의 뜻을 표출하기도 전, 불로 된 새가 미츠루기의 등 뒤에서 날아들었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츠루기의 손으로 향한 불새는 방패에 검이 꽂힌, 특이한 모양의 무기로 변했다.

 -C’mon the go

 검의 중앙에 츠루기가 조금 전 보여 주었던 구슬-큐타마-을 넣고 겁잡이를 움켜쥐자 특이한 소리가 무기에서 흘러나왔다. 검이 뽑혀 나온 자리 뒤편에는 불로 된 새와 비슷하게 생긴 붉은 새가 그려져 있었다.

그가 가호를 받은 성좌계가 봉황자리라 했던가- 검신에 휘감긴 불꽃이 주변을 감사 더는 제 집무실의 풍경이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미츠루기는 츠루기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깨달았다.


-


 휘감긴 불꽃이 사라지자 낯선 공간에 도착해있었다. 집무실 같은 풍경에 그리 낯설지는 않았으나,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어릴 적 그려보던 미래세상과 아주 흡사해 이질감이 들었다. 감탄도 잠시, 미츠루기는 제 상황을 깨닫고 앞에 있던 남자를 바라보았다. 제가 데려와 놓고도 안중에도 없다는 듯 검과 방패를 아무렇지 않게 던져버리고는-다시 불로 된 새로 변해 사라져버렸다- 방 안에 있던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방 안에 있던 사람 중 단발의 여성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멋쩍게 웃으며 조심스레 대통령, 이라며 츠루기를 불렀다.

 “아, 그렇지. 오기 전에 설명해줬으니까 대강은 알 테고. 보자… 자세한 건 여기 키미코가 알려줄 거야.”

 지구인이 나을 것 같다는 이유로 미츠루기의 앞으로 키미코, 라고 불린 아까의 여성을 밀었다.

다시금 눈이 마주치자 우주연방 대통령 보좌관, 나루세 키미코라며 자기소개를 했다. 미츠루기도 뒤따라 검사 미츠루기 레이지라며 소개를 했지만, 여기서도 제가 검사인가하는 의아함에 얼굴을 구겨뜨렸다.

 “그럼 이 몸은 회의가 있어서 이만.”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잔뜩이었지만, 미츠루기가 말을 걸 틈도 주지 않고 츠루기는 집무실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진이 빠져 화를 낼 기력도 없어 문을 열고 나가버리는 뒤통수를 어이없게 바라보고 있자하니, 키미코와 같은 제복을 입은 남성이 안쓰러운 눈빛과 함께 짤막한 말을 건넸다.

힘내세요- 어깨를 토닥이고는 츠루기를 따라 사라지고 나서 그 의미가 단순히 낯선 곳으로 끌려온 것에 대한 위로만이 아님을 미츠루기가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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