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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별 코드 T-01-201, 억압 작업을 시작합니다."
목 부위에는 털이, 온몸에는 붕대로 감은 듯한 모습. 그리고 새까맣다. 중앙본부 팀장에 안 어울리는 옷이었다. 심판 새에게서 얻은 이 옷과 유스티티아라는 붕대를 감은 대검을 등에 쥐고 어느 한 관리실 앞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T-01-201, 그러니까 '광기'를 작업하기 위해 관리실 안으로 들어갔다.
'광기'는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지루했는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환한 미소를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왔구나, 미츠자네 군."
"……."


'광기'가 말을 걸자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작업을 하러 왔을 뿐이지, 그와 대화를 하며 즐길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날개는 그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기 때문에, 난 그에게 P.E 박스를 뽑아내 에너지로 바꿔야 했다. '광기'는 그 자리에서 흥얼거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적었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갈 것처럼, 평소처럼 그러리라 생각했다.
그의 관리법은 이러했다. 그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말 것. 대답했다면 관리직 그 누구에게도 말을 꺼내지 말 것. 그가 한 모든 행동을 지켜보지 말 것. 그렇지 않으면 미쳐버릴 거라고, 관리자가 말하였다. 우리는 관리자의 말을 따를 뿐이다.


"내 이름이 있는데 '광기'라고 불리는 게 억울해, 미츠자네 군."


그는 입을 열었다. 입꼬리만 올려 미소를 짓는 것이 마치 악마의 모습이 보였지만 미츠자네는 그것에 굴하지 않았다. 미츠자네는 중앙본부 팀장이고, 다른 사람들보다 유능했기에 굴할 필요가 없었다.


"내 이름은 센고쿠 료마야, 료마. 날 '광기'라고 부를 필요는 없어."


대답하고 싶었다. 너희 같은 환상체에게는 이름은 필요 없다고. 너희는 위험한 존재일 뿐이라고. 그렇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관리법에 그렇게 쓰여 있었잖아. 말을 걸지 말라고. '센고쿠 료마'는 내게 다가와 무언가를 쥐여주었다.


"내가 만든 거야. 이름은 록시드. 너에게 도움을 줄지도 몰라."


그리고는 옅게 웃었다. 내 이름을 알려준 건 네가 처음이라서 주는 거야, 미츠자네 군. 다음에도 잘 부탁해. 라는 말을 남겼다. 목걸이 형태로 되어서 본 적 없는 과일 모양의 자물쇠가 쇠사슬에 걸려있었다. 무슨 효과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에게 받은 것을 목에 걸었다. 에고 기프트는 묘하게 강해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관리가 끝난 후 중앙본부로 복귀하였고, 수많은 관리직-중앙본부는 관리직이 10명이다.-이 말을 걸어왔다. 중앙본부는 상층과 하층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미츠자네는 상층에서 지내고 있었다. 상층 관리직들은 '광기'를 관리한 나에게 궁금증이 많았지만 나는 일일이 그것을 대답해줄 의무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들의 말을 대답해주지 않았다.
다른 관리직들은 재미가 없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들 바빠지기 시작했다. 곧 시간이 지나면 시련이 시작되기 때문에. 시련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중앙본부 상층의 2층으로 모여있었다. 무기를 쥐며 시련을 준비했고 시간이 지나자 갑작스레 눈앞에서 글씨가 보였다.
'우리는 끝없이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그 결과가 어찌 되더라도 우리의 머리로 이해하고자 했다.'
고개를 돌리며 글씨를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 글씨는 내 눈앞을 따라왔다. 그리고 저 들려오는 비명에 관리직을 데리고 시련을 맞이했다. 그 시련은 '만들어진 신'이었음을.
미츠자네는 '만들어진 신'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대처를 하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많은 직원이 죽은 것은 아니었기에 괜찮았다. 하지만 두려웠다. 그것을 처치한 후에 보였던 글씨는 또다시 나를 괴롭혔다.
'스스로가 무너져내리지 않기 위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 닿을 수 없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기에...'
원래 시련을 맞이했을 때는 이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록시드를 받은 이후부터 나는 이런 의미 없는 글씨들을 마주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그리 정신을 건드리지 않았다.

타이밍이 좋게도 '광기'에게 클리포드 폭주가 발생하여 나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것을 작업할 수 있는 중앙본부 관리직은 나밖에 없기 때문에.


*


"어땠어, 미츠자네 군? 내가 만들어낸 시련이야."
"……."
"끝까지 말하지 않을 거야? 그러고 보니 신기해. 여기 들어오는 관리직들은 나만 보면 미쳐버리던데."
"……."
"그때는 내가 말을 하게끔 했어. 네게 흥미가 있다. 내가 너를 날개보다 더 높은 곳으로 보내주겠다, 라면서. 다들 넘어가더라고. 재밌었어. 그렇지만 미쳐버려서 그들의 록시드를 전부 빼앗아버렸지. 그것들은 록시드가 빼앗기자 그대로 죽어버렸어. 흥미가 없어졌는데, 그때 네가 들어온 거야."
"그걸 다, 네가 한 거였어?"
"아, 드디어 말해줬구나."


미츠자네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을 회유하기 위한 악마의 목소리였음을. 그렇지만 관리법에는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미쳐버렸다는 얘기는 나와 있지 않았다. 미츠자네는 입술을 곱씹으며 고민했다. 이제 밖에 나가서 얘기하지 않으면 돼.


"네가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었어. 자, 어서 센고쿠 료마라고 말해봐. 전에 말했듯이 나는 '광기'가 아니거든. 이 사람들은 이상해. 내 이름을 내버려두고 '광기'라는 이름을 붙였다니까? 어서, 난 내 이름을 불러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어."
"아니, 말하지 않을 거야."
"아쉽네. 그래도 넌 미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다들 말을 하기만 해도 미쳐버렸거든. 넌, 강하구나."


'광기'는 입을 찢어져라 웃었다. 그렇지만 웃음소리가 들리진 않았고 자리에 앉아 다시 한 번 처음 봤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강하다니. 난 강하지 않은데. 눈가를 찌푸리며 관리실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뛰쳐나와 중앙본부에 도착하였다. 중앙본부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처럼 사람들이 말을 걸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스스로가 생각하고 있었다.
중앙본부에 사람이 없다면, 상층에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닌가?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내가 날개에 온 순간부터 이런 적은 없었다. 급하게 상층으로 뛰어가 중앙본부에 있어야할 사람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


도착했을 땐, 다들 커다란 환상체를 잡고 있었다. 그렇지만 두렵지 않았다. 왜인지, 이 록시드를 얻은 다음부터 무섭다는 마음은 커녕, 환상체는 잡기만 하면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환상체에게 달려들어 유스티티아를 꺼내 베어내니 존재는 사라졌다. 그 환상체에 고전하던 관리직들은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거나 시체를 쳐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미츠자네 님은 언제나 강하시네요."


한 관리직이 말을 걸었다. 나는 관리직의 이름을 외우는 편이 아니어서,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중앙본부로 돌아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미치면, 그 '광기'는 나를 죽이러 온다. 이것만은 똑똑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치지 않으려고, 미치지 않으려고 계속 노력했다.
'광기'는 스스로 걸어나온 적이 없다. 그렇지만 그것을 관리하던 관리직이 미쳐버렸을 때, 스스로 죽이려 오는 것을 지켜봤고 그것을 막기 위해 수만번을 막아봤지만 막아내지 못한 채 새로운 관리직이 들어왔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이유에서였다니. 충격이 가시질 않는다. 동료는 죽어가고 새로운 동료가 들어온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과 섞이지 않으려 했다. 친해지면, 죽어버리기 때문에.
하지만 코우타 형과 마이 누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안전팀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간간히 안전팀에 놀러가 대화를 나눴다. 팀장이 이러니 중앙본부가 어떻게 돌아가겠냐며 티페르트들에게 혼난 뒤부터 놀러가지 않았다. 안전팀 팀장이 아닌 코우타 형과 마이 누나는 그런 나를 위해 가끔씩 놀러와주었다. 나는 그들이 좋았다. 그들만큼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한가롭다고 생각했을 적, 나는 다시 '광기'가 있는 곳으로 향해야만 했다. 관리자가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나는 그것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광기'의 관리실 앞에 서있다가 한숨을 쉬며 들어섰을 땐, 그는 내 앞에 떡하니 서있었다.


"미츠자네 군, 미츠자네 군은 소중한 것이 있나?"


웃는 것이 소름끼쳤다. 그에게서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이미 말을 건넨 사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니, 없어."
"거짓말. 있는 거 같은데?"


꿰뚫어보고 있다는 듯이 관리실의 문이 닫히며 '광기'는 말을 이어갔다.


"난 다 알고 있어, 미츠자네 군. 내가 그 록시드를 왜 줬다고 생각해? 난 너희들에 대해 궁금해. 그래서 너희를 실험체로 쓰고 있었을 뿐이야. 날 믿고 있던 건 아닐테고, 왜 그리 마음을 놓고 있었을까?"
"그들을 건들 생각이야?"
"네가 하는 것에 달렸어, 미츠자네 군."


그는 록시드를 쿡, 하고 누르며 미소를 보였다.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들렸다.

아니, 착각인가? 눈을 질끔 감았다. 현실을 부정하듯 고개를 저으며 눈을 떴을 때 그것은 평소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수첩을 잡고 그가 하는 행동, 그리고 억압 작업을 했을 때의 반응을 적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환상도 아니었다.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내가 하는것에 따라 그의 반응도 달라진다. 나는 떨리던 손을 멈추고 에너지를 다 모았기 때문에 바깥으로 나가려는 순간 흘러나오는 바람을 느꼈다. 그것은 더이상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악마와도 같은 모습으로, 눈동자는 커지고 그 자리에서 바로 뛰쳐나올 수 밖에 없었다. 코우타 형, 마이 누나. 자신도 모르게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뛰쳐갔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미츠자네 군. 네 행동이 날 궁금하게 만들어.'
커다란 문구가 나를 지배한다. 자리에 멈춰섰을 때, 세계는 전부 하얀색으로 물들어있었다. 이곳은 안전팀도, 중앙본부도 아니었다. 나는, 나는….
별의 소리와 달의 속삭임. 그 너머의 진리…
그들의 울부짖음. 나와 당신의 공명. 발광하는 지성…
이해의 너머 아득한 안식의 지평선으로…
새하얀 방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읊었다. 내 자신이 아닌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별의 소리와… 달의 속삭임… 그 너머의 진리… 중얼거림은 커져만 갔다. 그 자리에 멈춰서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 너머에는 아득한 안식의 지평선…. 그 지평선으로 향한다면 나는 자유야…. 떨리는 입술을 멈출 수 없었다. 계속, 계속, 계속 나는 읊어대었다. 마치 주문을 외우듯 멈추지 않았다.
죽으라고 목소리가 나갈 정도로 입을 열었다. 미쳐간다. 미쳐가고 있다. 이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이해의 너머, 아득한 안식의 지평선으로…….
얼마나 지났을까. 내 눈 앞에는 마치 악마를 보는 것과 같은 것을 보았다. 환상인가? 아니, 현실이다. 그 악마가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손으로 내게 찔렀을 때, 그의 몸을 뚫은 무언가가 보였고 그대로 그것은 빠져나왔다. 그 악마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고 그 순간에도 그것은 록시드에 손을 가져다대고 있었다.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나는 이 굳어버린 세계에서 벗어났다.


*


눈을 떴을 땐 코우타 형과 마이 누나가 눈에 들어왔다. 내 품에 있는 록시드는 그대로 자리하고 있는 채 악마는 사라져있었다. 내 눈 앞에서. 록시드를 떼어내고 싶었다. 떼어내고 싶었는데, 그것은 떨어지지 않았다.

눈동자를 굴리며 우선 진정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코우타 형과 마이 누나는 걱정하는 눈빛과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고,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 괜찮아요, 코우타 형, 마이 누나."
"'광기'가 널 찾아왔어. 무슨 일 있어?"
"아니에요, 아무 일도 없어요."
"밋치, 정말로 아무 일 없는 거야?"
"네, 정말 아무 일 없어요. 마이 누나. 걱정 말아요."


마이 누나는 안심한다는 표정으로 지나쳤고 코우타 형은 환상체가 다가오는지 쳐다보고 있었다. 코우타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이 누나도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전팀으로 돌아가야했고, 나도 일을 제대로 해야했기에 어서 가보라고 얘기했다. 둘은 안심하며 안전팀으로 돌아갔다.

나도 내 할일을 해야했기에 다시 한 번 '광기'의 방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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