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전 클라이맥스
역전은 언제나 돌연적으로
※ 필자가 법이나 범죄에 밝은 편이 아닙니다. 법정과 범죄에 대하여 고증 오류가 존재할 수도 있으니 이를 유의해주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해주세요. <역전재판>과 <가면라이더 덴오>의 스포일러가 다소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2월 16일 오전 9시 45분, 지방재판소 피고인 제2대기실.
보통, 이곳은 피고인의 절규로 시끄러운 곳이다. 내가 맡는 사건은 대부분이 살인 사건이었고, 지금 맡은 것 역시 살인 사건이다. 더군다나 상대가 그 미츠루기 레이지라면 승률은 거의 0에 수렴할 정도라는 것이 사회적 인식이다. 그러니 피고인이 지레 겁을 먹고 우왕좌왕 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나는 나루호도 류이치. 미츠루기 레이지의 무패신화를 깨부순 신참 변호사, 라는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쑥쓰럽게도. 그러나 피고인은 그런 내 과거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처음부터 차분했고 조용했으며, 재판 직전인 지금도 조용했다. 아니면, 극도로 긴장하고 있는 것일까?
“왁!”
“으악?!”
……아무래도 극도의 긴장상태였던 듯 하다. 마요이가 다가가 피고의 등 뒤에서 소리를 지르자 피고도 놀라 같이 소리를 질러버리고 말았다. 그런 마요이는 기분 좋게 웃다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루호도, 이 사람 되게 겁 많으셔.”
“사람을 놀리면 못 써, 마요이.”
이 녀석은 아야사토 마요이다. 전 아야사토 법률 사무소의 소장이자 내 스승인 아야사토 치히로 씨의 동생이다. 그리고 영매사라는, 이쪽이야말로 만화에서 나올 법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자기는 능력이 시원찮다고 말하지만, 마요이의 영매로 도움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쾌활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어떤 사람과도 쉽게 친해진다. 보라, 벌써 피고랑도 친해져서 이야기를 조잘조잘 하고 있다. 어떤 이야기를 저리도 재미있게 하는지.
“아이리 씨가 노가미 씨 누나라고 했지. 좋은 사람이더라!”
“누나를 만났구나. 나중에 <밀크 디퍼>도 와. 누나가 엄청 좋아할 거야.”
그것도 내가 승소했을 때의 일이다. 이 사람이 억울한 피고인이라면, 승소하지 못했을 때 가족을 볼 낯이 없을테니 말이다. 이 사람은 노가미 료타로. 이번에 내가 맡은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그리고 지금으로썬 뾰족한 승산은 없다. 어설픈 미소를 짓고 있는 저 피고인을 살려낼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한 숨을 푹푹 쉬며 재판실에 입장한 나를 보며 미츠루기 레이지는 조소마저 흘리지 않았다.
그의 눈은 오직 피고인에게만 고정되어 있었고, 금방이라도 피고인의 모든 거짓말을, 모든 진실을 까발릴 준비가 되었다는 태도였다. 놀랍게도 피고인 노가미 씨는 위축된 표정을 짓지 않은 채 피고석에 앉았다.
어쩌면 미츠루기가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서심 재판 제도가 도입된 이후, 재판은 점점 리듬이 빨라지고 있었다. 재판장은 가장 기본적인 형식만을 갖춘 채 재판을 시작을 선언했다. 언제나 하는 일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긴장이 된다. 그런 나의 긴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요이는 자꾸 내 옆구리를 찌르며 장난을 쳤다. 처음 두 번은 무시했지만 세 번째 찌르자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얏, 아파. 왜, 마요이?”
“나루호도, 이거.”
마요이는 어느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봉투의 내용물을 짐작한 나는 내 표정이 환해지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언제 받아왔어?”
“방금 전에.”
그러고는 마요이는 밝게 웃어버렸다. 그런 웃음에 긴장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안도가 섞인 한숨을 쉰 나는 곧이어 미츠루기가 내놓은 증인을 바라보았다.
“이토노코기리 형사,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도록.”
마음씨 좋은 이토노코 형사님은 재판마다 얼굴도장을 찍고 가는 형사이다. 이토노코 형사님은 평소와 같은 약간 뚱하지만 착실한 표정으로 사건의 개요를 나열하기 시작했다.
“에, 피해자는 ‘사나기 마츠다’이고, 피고인과는 동창관계라는 것 같슴다. 피해자는 자신의 자취집에서 푹, 하고 집 문 앞에서 복부를 찔려 얼마동안 살아있다가 결국 사망했슴다. 사용된 흉기는 식칼로, 집 안에서 쓰던 식칼 하나가 사라져있는 것으로 피해자의 집에서 쓰던 식칼이란 것으로 판명났슴다.
물론, 식칼에는 노가미 씨의 지문이 묻어있었슴다.”
“그 칼을 피고가 빌렸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확실하게 조사했나?”
“그렇슴다. 그것은 피고가 직접 증언한 내용임다.”
노가미 씨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뜻이겠지. 아무리 억울한 피고인이라도 자기가 불리할 만한 증언은 무의식 중에 숨기기 마련인데. 미츠루기도 아마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말을 하면 불리해질 텐데 왜 숨기지 않았지?”
아마 미츠루기식 다정이거나, 과거의 참회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깨끗한 척 하는 피고인의 위선을 지적하는 것일 수도 있겠고. 말의 의도는 아마 미츠루기만 알 것이다. 피고인 노가미 씨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실을 전부 말해야만 진실이 밝혀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가……. 그렇군.”
미츠루기의 입가에 스쳐지나간 미소는 나와 마요이 밖에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바로 돌아서 이토노코 형사님에게 다른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망 예정 시각은?”
“사망 예정 시각은 오후 5시 경……. 피고인은 버스를 이용하여 3시 경에 피해자의 집으로 향했슴다. 시체는 문을 머리에 대고 쓰러져있었고, 그리고 시체 밑에는 왜인지 주황색 크레파스가 떨어져있었슴다. 이상임다!”
“마지막 이야기는 안 해도 괜찮았겠지만, 그럼 바로 피고 심문에 들어가지.”
윽, 미츠루기의 빠른 진행은 넋 놓고 있다가는 휘말리기 쉽상이다. 마요이도 그것을 느낀 듯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나루호도, 넋 놓고 있다가는 금방 노가미 씨가 유죄가 될 거야.”
“응. 집중해야지.”
그렇다해도 심문에 굳이 이의를 제기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나도 노가미 씨와 이야기를 제대로 나눠보지 않았기 때문에 노가미 씨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들어보고 싶었다. 곧이어 이토노코 형사님이 증언석에서 내려가고, 증언석에는 노가미 씨가 자리했다. 그의 표정은 굳어있었지만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노가미 씨가 자리를 잡자 재판장이 물어왔다.
“피고인, 이름과 직업은?”
“이름은 노가미 료타로, 직업은, 알바생이랄까요.”
그는 볼을 긁으며 얼빠진 웃음을 보였다. 아무리 잘 봐줘도 누군가를 죽였을 만한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범죄자가 흉악하게 생겼을 거라는 선입견은 초보 변호사도 갖지 않는 고정 관념이다.
이를 상기하며, 그저 의뢰자를 열심히 믿으며 진실을 밝혀내자는 나의 신념에 따라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심문을 시작하겠소. 피고, 사건 당일, 무슨 일이 있었나?”
그 날의 기억을 상기하려는 듯 조금 미간을 찌푸린 노가미 씨가 말을 이었다.
“그 날은, 저희 카페에 있는 칼을 부러트려서 잠깐 빌리러 갔던 참이었어요. 그리고 그걸 다시 돌려주려 가는 길이었고요. 빌리러 갔다가 오는 길에 자전거를 가져오지 않아서 버스를 타고 갔어요.”
“칼을 빌리려면 옆 집에서 빌려도 됐을텐데 왜 거기까지 버스를 타고 간 거지? 그리고 자전거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어 보이는데 말이다.”
“마침 그 쪽에 있는 시장에 들렸었거든요. 오래된 친구도 볼 겸 해서. 자전거는…… 지금 이 사건과는 관련 없어보이는데요.”
노가미 씨는 눈을 굴렸다. 말하기 곤란한 무언가가 있는 눈치였다. 마요이의 미간이 구부러졌다.
마요이도 무언가 있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그 부분에 대하여 더 물어보기 직전, 재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관련 없어보입니다. 피고인, 계속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칼을 가져다주고,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 하다가 나왔어요. 그 후엔 어찌저찌 집에 돌아왔다, 이 정도일까요.”
“그 중 특별한 것은 없었나?”
“딱히, 그러고 보니까 조금 추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마츠다 씨가 가져다 준 차가 쎈 허브 차라서 별로 마시지 못했다, 정도요. 마츠다 씨는 잘 마시더라고요.”
나와 미츠루기, 그리고 마요이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건 당일은 10년 만의 한파라며 메스컴이 떠들었었지.”
“그 날, 나루호도가 바지에 물 흘려놓고 나갔다가 그대로 바지가 꽁꽁 얼어붙었었지?”
그 바지는 나와 놀러온 하루미의 열과 성을 다한 소생술로 인하여 다시 얌전히 내 옷장에 들어가있다. 은은하게 웃으며 짧게 회상을 마무리하고, 나는 질문했다.
“혹시 칼의 지문이 어떻게 나왔는지 좀 볼 수 있을까요? 노가미 씨의 말에 따르면, 건네주는 동안에 칼에 지문이 찍혔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회장이 갑자기 떠들썩해졌다. 저 너머 앉아있는 이토노코 형사님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허둥거리며 지문이 어떻게 찍혔는지에 대한 사진을 증거품으로 제출한 형사님에 미츠루기의 표정도 똑같이 어두워졌다
. 미츠루기의 입이 움직이고, 이토노코 형사님의 표정이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시끄러워진 관중을 가라앉히는 재판장의 망치 소리가 들렸다.
“정숙, 정숙!”
“‘이토노코기리 형사, 다음 달 월급 기대하게.’ 아마 이런 말이었을거야.”
이 때 만큼은 나도 내 모든 것을 걸고 인정할 수 있었다. 헛기침을 한 미츠루기가 말했다.
“그렇다면 피고가 피해자의 집에서 나온 시간은 대략 몇 시 쯤이었는지 기억하는가?”
“분명히 기억해요. 4시에 하는 라디오 중에서 마츠다 씨가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가 있어서 그거 시작하는 소리를 듣고 나왔거든요. 프로 이름이 <토노사맨 라이브>였던가.”
“아, 나도 들었어. 항상 4시에 시작한다구.”
“그렇다면 피고는 5시 전에 집에서 나왔으므로 범인일 가능성은 줄어든다고 봅니다.”
그런 내 말에 미츠루기가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 저 눈빛은, 무언가 숨겨둔 카드가 있을 때의 표정인데?
“그 프로는 분명히 4시에 시작한다. 피해자가 그 라디오에 응모한 흔적도 있어. 그런데, 피고가 다른 시각에 피해자의 집에서 나오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면, 어쩔텐가?”
미츠루기는 특유의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목격자가 있었던 모양이다. 윽. 마요이의 표정을 보니 내 표정이 어떤 꼴일지는 예상이 간다. 입장하는 목격자를 보니, 내 목숨줄이 짧아지는 느낌이다.
“증인, 이름과 직업은?”
“쿠로이시 마사시입니다. 직업은, 아직 고등학생이요! 사나기와 노가미의 동창입니다아.”
“사건을 목격했다고 했지, 사건에 대해서 말 해보도록.”
“저는 사나기의 옆옆 집에 사는데요, 쓰레기 버리러 나오고 있었거든요. 5시 뉴스를 보고 있다가 나왔으니까 정확해요. 그런데 사나기의 집에서 놀란 듯 나오는 노가미를 분명히 봤다고요. 이상하다 싶어서 사나기의 집으로 가보니까, 시체가!”
시간까지 명백했다. 손에 땀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마요이가 치히로 씨의 영매를 시도하다 실패한 듯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손을 바지에 죽 닦아도 자꾸 손이 미끄러졌다. 역전해야 하는데. 역전해야 하는데.
노가미 씨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방금 발언에는 분명 모순이 존재할 것이다.
“이의, 이의 있소오오!”
재판장님, 나, 마요이, 미츠루기의 시선이 피고석으로 꽂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있는 노가미 씨가 살짝 쑥쓰러운듯, 그러나 물러설 수 없다는 듯 쿠로이시 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분명 4시에 그 곳을 나왔어요. 저, 카페 알바생이라서 많은 사람이 봤을텐데. 목격자는 수많을 거예요!”
“맞아. 저 사람, 분명 그, 카페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아이리 씨의 남동생이지?”
“저 증인, 거짓말쟁이 아니야?”
“정숙, 정숙하시오, 정숙!”
웅성거리는 관중. 그 사이에서 희망이 피어올랐다. 저 많은 관중들도 본 적이 있다면 노가미 씨가 거기에 있었다는 증거는 당연히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미츠루기의 표정이 전과 같이 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만만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변호인, 피고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증인은 사진기사 지망생이었다.”
어째 안 좋은 예감이 드는데.
“그리고 증인은 사건에서 도망치는 피고를 찍었지.”
안 좋은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이런 피고 쪽에 불리한 증인은 항상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오기 마련이었다.
“재판장, 증인이 찍은 사진을 증거품에 추가해주길 바란다.”
“네, 네에. 증거품을 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재판장은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허둥지둥 증거품을 수리하였다. 평소와 같이 재판을 감상하고 있었나보다. ……이런 속 편한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지금 상황은 매우 안 좋다.
다시 피어오른 희망은 맥없이 다시 사그라들고 있었다. 옆에 서 있는 마요이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루호도, 포기하면 안 돼! 나도 포기하지 않고 언니를 불러볼게.”
마요이의 필사적이기까지 한 말은 오히려 상황을 더 비참하게 느끼게 하였다. 열심히 하지 않더라도 상황은 충분히 나쁜데. 증언대에 서있는 노가미 씨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었을 때, 그의 입에선 놀라울만큼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억이 안 나요.”
“뭐?”
미츠루기의 무표정에 어이없음이 피어올랐다.
“기억이……나질 않아요. 저는 분명 그 곳을 간 적이 없었는데. 설마, 그들이?”
노가미 씨는 계속해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이었다. 분명히 사진이 찍혔는데 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 중에서도 질 나쁜, 바로 들통 날 만한 거짓말이다. 방금 전에 보였던 태도와는 확실히 다르지 않은가. 그 때, 내 머리에 번개가 치듯 지나간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발상을 역전해봐, 나루호도.
스승인 치히로 씨가 항상 하던 말이었다. 그래, 발상을 역전해서, 거기에 간 기억이 없다는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거기에 있었음에도 기억을 못 하는 것이라면?
“참고로, 이 사진의 조작 확률은 0이다. 모두 확인했어. 당신이 여기에 없었을 확률 역시 0이라는 소리다.”
“……끄러.”
노가미 씨가 중얼거렸다. 조금이나마 들린 뒷 말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기에 다시 한 번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
“피고, 방금 뭐라고―”
“시끄러, 시끄럽다고! 정말, 멋대로 이리저리 이것저것 말하지 말란 말이다!”
순식간에 회장이 조용해졌다. 나도, 마요이도, 미츠루기도, 재판장님도 말을 잃은 채 노가미 씨를 바라보았다. 미츠루기가 이번엔 완전히 어이없음을 드러낸 채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이 몸, 등장!”
다시 말이 막힌 미츠루기가 자신의 이마를 쳤다. 묘하게 당당한 포즈를 취한 노가미 씨는 방금 전의 증언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뭐랄까, 조금 더 거칠어졌고, 조금 더 거침 없어졌다.
“즈, 즈, 증인! 소란 피우면 법정 모독죄가 적용됩니다!”
“시끄러, 망할 할아범! 말했잖냐, 료타로는 거기 가지 않았다고!”
다시 한 번 회장이 조용해졌다. 아마 반은 그의 입에서 터져나온 폭언 때문에, 나머지 반은 입에서 터져나온 삼인칭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마요이와 나로 증명할 수 있다. 나는 ‘망할 할아범?’이라 중얼거렸고, 마요이는 ‘료타로는?’이라 중얼거렸다. 어쨌든, 순식간에 회장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휘어잡아버린 그는 조금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료타로, 아니, 나는 분명 거길 가지 않았어. 사진이 조작된 거라고!”
이번에는 내 표정이 자신만만한 표정일 것이다. 내 손에 들린 종이봉투가 드디어 빛을 발할 시간이었다.
“이의 있소!”
삿대질 할 필요까진 없지만, 이의를 제기할 때 나도 모르게 피가 끓어 삿대질을 해버리고 만다.
쭉 내민 손가락의 끝은 방금 전까지 증언석에 서 있던 노가미 씨다. 아니, 노가미 씨가 아닐지도 모른다.
“―라고 했지만, 이의는 사진이 조작되었다에 제기합니다.”
“나루호도, 포기한 건가? 사진이 조작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거기에 있지 않았다니, 말이 안 되지 않나.”
“아뇨. 이것을 봐주십시오. 피고인 노가미 료타로 씨의 정신병원 진찰서를 증거물로 제출합니다.”
“수리합니다.”
이번엔 재판장도 재빠르게 증거물을 수리했다. 아마 고도로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가미 씨는 여러 번 주변 인물들에게 다중인격 같다는 말을 들었고, 한 번 상담을 받아본 결과 다중인격이 의심된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군요.”
“서, 설마!”
미츠루기의 표정이 제대로 무너졌다. 그 무너진 표정에 반비례하여 내 표정은 더욱 자신만만해졌다.
“그렇습니다. 보통 인격들은 기억을 공유하지는 않죠. 노가미 씨가 저기에 있었지만 기억을 하지 못한 것은 이런 특성 때문인 겁니다.”
제대로 정곡을 찌른 것이다. 그렇게 웃고있으니 마요이가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엥? 고개를 들어보니 미츠루기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엥?”
“‘엥?’이 아닙니다, 변호인!”
미츠루기는 전과 같은 상태를 되찾았다.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온 미츠루기가 천천히, 힘을 주고 말 했다.
“변호인은 지금 ‘피고인이 그 곳에 있었지만 기억을 못 하는 이유’에 대해서 증명한 것 뿐이다. 오히려 피고인이 그 곳에 있었던 것을 증명한 꼴이 되어버렸군.”
“나, 나, 나루호도! 설마 노가미 씨를 유죄로 만드려는 건 아니지?”
“뭐야? 어이, 삐죽머리! 너 료타로의 변호인 맞냐?”
그러고 보니 그랬다. 결국 나는 자신의 구멍을 판 꼴이 되는 건가? 노가미 씨―아니겠지만―는 잔뜩 화가 나보였다.
“죄, 죄송합니다, 노가미 씨.”
“어라, 사과하는 거예요?”
숙인 고개 위로, 또 다른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노가미 씨의 분위기가 또 바뀌어있었다.
“별로 기대한 적은 없어서 사과하지 않아도 좋은데. 아, 거기 아가씨. 나한테 낚여 볼래?”
“……나루호도, 또 인격 바뀐거지? 저 인격은 왠지 싫다.”
노가미 씨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마요이를 바라보았다. 폼이 유혹을 한 두번 해 본게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유혹당한 마요이는 그리 좋지 않았던 듯 특유의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노가미 씨―역시 아니겠지만―는 짐짓 상처받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움 받은걸까나. 그렇다면 사과의 의미로 미소 라멘 사줄게.”
“진짜요? 나루호도! 저 인격, 좋은 사람이야!”
마요이의 단순함은 특이한 구석이 있다. 그런 특이함이 지금과 같은 어쩌면 귀여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피고인, 법정에서 유혹하면 안 됩니다.”
“네에.”
재판장의 말에도 유들하게 대처한 그는 말을 이어붙였다.
“방금 그 증명은, 료타로가 아닌, 그래, 인격들이라고 하지. 우리 인격들이 범행을 저질렀을 수도 있다는 것도 증명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용의자 심문 상대를 바꿔야 하지 않아? 마침 그 자리에 있었을 녀석이 한 명 있거든.”
그의 어투는 잔잔했지만 파급력은 상당했다. 그래서인지 충격은 뒤늦게 찾아왔다. 이번엔 관중들도 숨죽여 그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인지 조용한 법정 안에 노가미 씨의 목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잠깐의 침묵 후, 미츠루기가 말했다.
“얼른 그를 앞으로 내세우도록.”
“근데 말이야, 그 녀석이 콕 틀어박혀서 영 나오지 않거든요. 누님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누님이라면, 아이리 씨 말인가요?”
“정답. 아이라서 그런지 누나를 엄청 좋아한답니다.”
검사 측에서 급한 움직임이 있었다. 이토노코 형사님이 다시 우당탕 소리를 내며 검사 측으로 나왔다.
“형사, 정중하게 노가미 아이리 씨를 모셔오도록.”
“우, 알겠슴다. 왠지 오늘따라 많이 불려오는 것 같아서 울 것 같슴다.”
그 말에 엄한 노가미 씨가 당황했다. 마요이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왜 그래요, 노가미 씨?”
“아, 이 법정 위에서는 ‘운다’에 관한 단어는 꺼내지 않는게 좋을걸. 왜냐면―”
말이 다시 끊겼다. 그리고 다시 드는 불길한 예감은, 한 치의 비껴감도 없었다.
“눈물 나네!”
“도대체 노가미 씨의 인격은 몇 개야……?”
“내 포함하모 총 네 명이다!”
노가미 씨는 호탕하게 말 했다. 진짜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도 세 명은 봤으니 남은 건 그 용의자뿐인가. 머리가 절로 아파왔다.
아이리 씨가 오기 전까지 잠시간의 휴정이 선언되었다. 대기실로 들어오자 긴장이 탁 풀리는 것 같았다.
틀림없이 유죄 판결이 났다고 생각했다. 아마 노가미 씨의 두 번째로 튀어나온 인격이 없었다면 지금 오는 아이리 씨를 볼 낯이 없었겠지.
으,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축 처져있는 내가 불쌍했던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 마요이가 얼굴을 바싹 붙여왔다. 나를 이리저리 바라보던 마요이가 넙쭉 무언가를 내밀었다. 토노사맨 호빵이었다. 마요이가 목소리를 낮춰 미츠루기의 가방에서 빼왔다고 했다. 마냥 해맑은 마요이를 보니 내가 이렇게 축 쳐져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가장 힘든 건 노가미 씨일 테니까. 토노사맨 호빵을 마요이에게 들려주고 노가미 씨를 살펴보았다.
기세가 다시 처음에 보았던 노가미 씨 같아졌다.
“노가미 씨, 저, 죄송합니다. 자꾸 실수도 하고, 해서.”
“아니에요.”
노가미 씨는 웃음으로 화답함으로써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고, 덧붙인 이야기는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리고 누나 이야기라면, 지금 전화로도 해도 될텐데.”
이토노코 형사가 출발하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는 꽤나 희망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출발했을 가능성이 높다. 속으로 달리던 경찰차가 다시 유턴하는 모습을 그려본 후 나는 그에게 제발 그래달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 노가미 씨는 문자로 무언가를 열심히 써서 보냈다. 곧 귀여운 벨소리가 울려퍼지고, 전화를 받은 노가미 씨가 전화를 내리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재판장은 재판 시작을 선언할 때와 비슷한 빠르기로 재개를 선언하였다. 이토노코 형사님은 거의 다 와서 돌려야 했다며 투덜거렸고, 미츠루기는 증언석에 선 노가미 씨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노가미 씨는 이쪽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어디서 가지고 온 것인지 자동 비눗방울 기계를 돌려 무수한 비눗방울을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노가미 씨의 두 번쨰 인격이 말한 아이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그는 그렇게 한참을 비눗방울을 가지고 놀아댔다. 그 동안 미츠루기는 헛기침도 해보고,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려도 보았고, 대놓고 불편하다는 기색을 내비쳤지만 안쓰러울 정도로 노가미 씨는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결국 미츠루기가 먼저 포기해버렸다.
“피고, 이름과 직업을.”
“나? 나는 류타로스! 직업은, 덴오?”
아마 저 노가미 씨의 인격은 류타로스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노가미 씨는 바로 말을 정정했다.
“아, 지금은 료타로라고 해야하나? 그럼 나는 노가미 료타로! 직업은, 나도 모르겠어. 역시 덴오인가?”
당사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 화가 났을 법한 발언이었다. 목 끝까지 차오른 울 것 같다는 말을 집어넣고 질문을 꺼냈다.
“노가미 씨, 사건 현장으로 왜 다시 돌아갔죠?”
“내 크레파스를 잃어버렸어. 아끼던 거였는데. 누나의 옷을 칠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거야. 분명 그 집에 두고온 거였어.”
“나루호도, 이토노코 형사님이 말했던 크레파스 이야기인가봐.”
확실히, 이토노코 형사님이 전에 크레파스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노가미 씨의 것이었나보다.
“그럼, 노가미 씨. 사건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 말해줄래요?”
“아무것도 없었어!”
노가미 씨의 말에 법정에 있는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것이 거짓말이란 것은 이 법정 위의 전부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고, 거짓말하지 말고 정확한 증언을 해 주길 바란다.”
“에, 하지만 거짓말 아닌걸. 정말 아무 것도 없었어. 산 사람은 아무도 없었잖아?”
노가미 씨가 재미있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아이처럼 키득거렸다. 하지만 그 말은 아이가 했다기엔 지나치게 차가웠다. 다시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재차 질문했다.
“정확히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히.”
방긋방긋 웃던 노가미 씨의 표정에서 갑자기 웃음이 지워졌다.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는 딱딱히 굳어져 나왔다.
“5시, 분명히 5시였어. 덴라이너에서 5시 5분에 내렸으니까. 그리고 마주쳤어. 사진기. 크레파스를 가지러 갔을 뿐이었는데. 찾을 수 없었어. 추웠고, 아무런 생각도 안 들었고. 차가웠고,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
시간이 사라지면 어디로 갈까?”
노가미 씨는 말을 했다기보단 아는 단어를 나열한 것 같이 말했다. 그렇게 딱딱하게 말하며 머리카락을 꼬던 노가미 씨가 갑자기 빙긋 웃었다.
“이 정도면 됐어?”
당연히 모자랐다. 설명이 되지 않는 새로운 단어의 등장도 있었고, 앞뒤 관계도 제대로 알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라고 했지. 시체를 보았다면 그러한 반응은 당연했다. 나는 차마 더 물어보지 못 했다.
하지만 그 틈새를 미츠루기가 파고 들어갔다.
“이미 시체가 있었다는 말인가?”
노가미 씨는 말이 없었다. 아마도 긍정의 의미인 것 같다.
“하지만 사망 예정 시각은 5시 아닌가? 당신은 5시 5분에 도착했다고 했지.”
그 순간 나는 무언가가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추웠고, 차가웠고. 10년만의 한파?
“이의 있소! 혹시, 사망 예정 시각이 다르다면?”
“나루호도, 그건 무슨 소린가?”
“분명 10년만의 한파니 뭐니 할 정도로 추웠다고 했죠. 피해자는 5시 이전에 죽은 겁니다! 5시에 죽었다면 예상 사망 시각이 더 뒤로 나왔겠죠!”
“나왔다, 나루호도의 전매 특허!”
마요이가 작게 탄성을 질렀고 관중들이 각자 떠들어댔다. 왜 지금까지 사망시각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궁금할 정도이다. 미츠루기도 크게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숙, 정숙!”
나는 조금 더 밀어붙이기로 했다. 방금 전 증언은 앞 뒤가 안 맞아보이지만 하나 하나 뜯어보면 상당히 영양가 있는 증언이었다. 나는 결의를 다지며, 마요이의 말처럼, 전매 특허인 허세 부리기를 시도했다.
“그 전에 피고가 피해자를 죽였다면―”
“피해자는 그 날 <토노사맨 라이브>에 응모했다고 했죠. 피고인의 행적을 많은 사람이 목격하기도 했고요. 피고가 이렇게 아이같은 인격이 나와있었다면 신고에 대하여 고려하지 못했기에 시체 발견 후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도 설명이 됩니다. 그런고로, 피고인이 아닌 제 3자가 범인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제시하시죠. 진범은 누구입니까?”
후우, 한 번 숨 쉬고, 후우.
“진범은…… 목격자인 쿠로이시 마사시 씨라고 생각됩니다.”
“이유는?”
미츠루기가 날카롭게 물어왔다. 역시 미츠루기는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노가미 씨의 증언에 ‘사진기’라는 단어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지금까지 왜 눈치채지 못했는지 모를 정도인데요, 사진은 집 안 쪽에서 찍혀있었습니다.”
미츠루기가 급하게 사진을 들어올렸다. 얼마나 급하게 들어올렸는지 사진에서 쉬익 하는 소리가 났다.
아무리 봐도 사진 속 시체는 발을 안 쪽으로, 머리를 문 쪽으로 두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의 시선은 문 쪽이 보이는 구도였다.
“이런 구도는 한 곳에서만 볼 수 있죠. 바로 집 안 쪽에서 찍을 때 입니다! 얼른 쿠로이시 마사시 씨를 불러주세요!”
쿠로이시 마사시 씨는, 아이리 씨를 찾아갈 때 처럼 긴 시간을 필요로하지 않았다. 증인 대기실에서 바로 불려온 마사시 씨는 살짝 기분이 나빠보였다.
“왜 다시 부른거죠? 노가미가 범인이라는 것은 이미 밝혀졌다고 생각했는데요.”
“마사시 씨, 더 하실 말씀 없으신가요?”
마사시 씨는 눈을 찌푸린 채로 웃었다. 성가시다는 투였다.
“제가 본 건 그대로 끝인데요.”
“증인, 당신이 찍어서 낸 사진이 집 안에서 찍은 것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만.”
미츠루기의 지적에 마사시 씨의 웃음이 바로 사라졌다.
“……사실 전 사건 당시 사나기의 집에 있었어요. 그리고 노가미가 찾아왔고, 들어오는 척하며 사나기를 찌르고 갔죠. 저와 눈을 마주치니 바로 도망치더라고요. 이 사실을 처음에 말하면 의심받을 것 같아서 일부러 말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당연히 안 쪽에서 사진이 찍혔을 수 밖에 없죠. 알겠어요?”
드디어.
드디어 상대가 허점을 보였다. 이 곳을 놓친다면 아마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도 마찬가지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다. 벌써 성질 급한 재판장은 망치를 들려 하고 있다. 아직은 아닙니다, 재판장 님. 나는 책상을 쾅 내리쳤다.
“이의 있소!”
내 목소리가 법정을 울렸다. 모두가 이야기를 멈추고 삿대질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차분하게, 다시 한 번 나의 논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시체의 위치가 이상합니다. 밖에서 찔렀다면 시체는 안 쪽으로 쓰러졌겠죠. 하지만 사진 상의 시체는 문 쪽으로 쓰러져 있었습니다. 이는 집 안 쪽에서 찔렀을 때 생기는 구도죠!”
마사시 씨는 말이 없었다. 미츠루기마저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칼의 위치도 설명이 안 됩니다. 노가미 씨는 분명 칼을 가져다 줬다고 했죠. 그렇다면 칼을 가지고, 집 안에서 찌를 수 있는 상대는, 쿠로이시 마사시 씨. 당신 밖에 없습니다!”
“만약 피고가 안으로 들어가서 찔렀다면?”
“그랬다면 마사시 씨를 눈치채지 않았을 리가 없죠. 살인을 누가 보는 앞에서 하고 도망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마사시 씨는 나를 노려보았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렸다는 투였다. 하지만 이 이야기엔 큰 허점이 있다.
마사시 씨의 이야기에서 도출해 낸 사실이기 때문에 살인 동기에 대하여 물고 늘어지면 이야기 해줄 말이 없었다. 긴장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마사시 씨를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마사시 씨는 맥이 풀렸다는 듯 픽 웃어버렸다. 웃었어?
“……맞아요. 내가 죽였어요. 사나기가 너무 미웠어. 나보다 잘난 건 하나도 없는 주제에 착한 척 하는 것 같았다고요. 그래서 죽였어요. 죽였는데, 노가미가 돌아오더라고. 목격 된 이상 덮어씌우자 하고 신고했는데, 저 녀석이 다중인격이었을 줄은.”
그러고 마사시 씨는 킥킥 웃었다. 곧 그 웃음은 슬픔을 먹고 몸집을 불려 법정을 가득 채웠다.
그 웃음에는 자조와 후회가 들어갔을 거라고 확신한다. 재판장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망치를 들었다.
“그렇다면, 피고인 노가미 료타로 씨에 대하여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피고인, 노가미 료타로는―”
2월 16일 오후 6시 59분, 지방재판소 피고인 제2대기실.
“우와아. 축하드려요, 노가미 씨!”
이곳은, 보통 마요이의 시작으로 소란스러워진다. 노가미 씨는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어이, 삐죽머리! 너, 좀 하지 않냐!”
……아무래도 첫 번째로 나온 또 다른 인격이었던 것 같다. 그는 금방이라도 나를 꼭 껴안고 방방 뛸 만큼 기뻐하고 있었다.
“기대도 안 했는데, 낚여줘서 기뻐. 고 삿대질, 눈물 나는구만! 나, 아저씨 그려도 되지? 대답은 듣지 않아!”
네 인격이 전부 번갈아가며 다른 목소리로 말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노가미 씨도 비슷했던 것 같다. 마지막 인격이 지나고 상당히 곤란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으니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그림이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다.
“노가미 씨, 이거요. 잃어버린 물건이에요. 마지막 아이의 물건인 것 같지만.”
피가 묻어있는 크레파스는 크게 중요한 증거품이 아니었어서 그런지 바로 반납 처리가 되었다. 노가미 씨는 그 크레파스를 받아들고는 방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잘 전달해줄게요.”
“노가미 씨, 노가미 씨. 지금 물어보는 건데요, 자전거를 두고 간 또 다른 이유가 있어요? 나 무지 궁금했는데!”
마요이가 손을 붕붕 흔들면서 물어왔다. 노가미 씨가 당황할 거라고 생각하고 말리려 했던 나는 다음 순간, 그의 얼굴에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납게 웃어준 노가미 씨가 말했다.
“마요이라고 했냐? 료타로는 이걸 왜 숨기는지. 우리는 ‘덴오’거든. 덴오 일을 하느라 덴라이너를 타고 갔어. 방금 꼬맹이가 말하지 않았던가?”
나와 마요이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덴오?”
“첫 번째 인격?”
“인격도 아니지만, 이건 설명하기 힘드니 패스! 그, 뭐더라, 너희들이 말했던 토노사맨 같은거야. 그리고 나는 모모타로스!”
이번엔 둘 다 같은 말을 동시에 했다.
“모모타로스?”
“그럼, 간다! 잘 있어라! 언젠가, 미래에서 봐요.”
마지막 말은 다른 인격도 아닌, 분명한 노가미 씨였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창고 문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왜 그런 걸 말했냐며 면박을 준 것도 같다. 마요이가 창고 속으로 들어가는 노가미 씨의 모습에 당황하며 뛰어갔다.
“노가미 씨, 거기가 길이 아닌데―”
활짝 연 창고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노가미 씨의 모습은 커녕, 그가 입고있던 옷의 실털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요이는 창고 안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문 뒤도 한 번 살펴본 후 고개를 저으며 나왔다.
“없어. ‘감사합니다’라고 적혀있는 돈 봉투랑 모래 뿐이야. 의뢰비인 걸까나.”
“그래도 떼먹지는 않아서 다행이네. 하하.”
어색하게 웃는 나를 보며 마요이도 같이 웃었다. 아마, 노가미 씨는, 내 인생을 통틀어도 가장 이상한 의뢰인일 것이다. 여러 일들이 겹치고, 마지막엔 깔끔하게 사라져 버리기까지. 그러나, 나쁜 추억이 될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전에 만나 아이리 씨가 말했던 과거가 희망을 준다는 말을 상기하며, 나는 노가미 씨가 사 주지 않은 마요이의 미소 라멘은 얼마인지 기억해내기 시작했다.





